열다섯 번의 밤
그러고 보니 요즘 부쩍 노란색이 좋아졌다. 밥통도 노란색이었으면 좋겠고, 에스프레스 기계도 노란색이었으면 한다. 세련된 것이 결국 나답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련된 게 멋있는 줄 알고 괜히 어울리지 않는 것을 품은 채 불편한 얼굴을 하고 있는 나를 보며 알아차렸다.
나라는 사람을, 나라는 이의 속 얼굴을 제대로 보는 데 35년이 걸렸다. 너도 혹시 그럴지 모르겠다. 세상에서 제일 나를 학대하는 사람은, 제일 나를 몰라주는 사람은 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견딜 수 없이 내가 싫은 날이 있다. 뭔가를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아무 것도 남지 않았을 때, 돌아보니 모두 내 아집이었던 것만 같아서, 내게 남은 진짜가 뭔지 모르는 지금의 내가 싫다.
나는 너에게 진심을 쓰고 있는 것이 맞는가? 지금 이 순간에도 그것을 의심한다. 나는 내가 적당히 잘 꾸며낸 거짓의 문장 같다.
너는 어떤가? 너는 얼마만큼 진솔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너라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너는 아집이 없어서, 담백한 사람이어서 수식어를 덧붙이지 않고 살아갈 것이다. 너는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또 잘 모르겠다. 너를 보지 않은 지도 십 년이 지났으니까. 나는 너를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모두 과거의 일이 되었다. 나 역시 많은 것이 달라졌다. 내가 가진 10 중에 7이 변했고, 그것은 나의 인생을 통째로 뒤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나의 3은 그대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다.
너도 그렇지 않을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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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다. 적어도 스물다섯의 나보다는 지금의 내가 좋으니,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말했듯이 여전히 3이 남았다. 내가 나일 수밖에 없는 그 3은 이 세계와 나 사이에 깊숙하게 뿌리를 내려 흔들릴지언정 절대 뽑히지는 않는다. 나는 여전히 3을 가진 내가 싫다. 다만 싫은 것을 데리고 사는 법을 배워간다. 그러나 인생이란 다 그런 것이라는 말은 절대 하지 않겠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3을 버리는 나를 꿈꾼다. 너는 나의 3을 미워하지 않고, 3을 버리고 싶어 하는 나를 응원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너에게 함부로 손을 뻗지 않겠다. 우리가 아낌없이 우리의 시간을 이미 써 버렸다는 사실을 나만큼 너도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다행히 내게 친구들이 몇 명 남아 있다. 너도 잘 아는 H와 A와 J가 있다. 임신 중인 애도 있고, 너처럼 아들을 낳은 애도 있고, 아직 혼자인 애도 있다. 서로 연락도 뜸하고 사이도 예전 같지는 않다. 짐작하겠지만 그때 ‘우리’라고 불렸던 우리는 이제 없다. 각자의 ‘우리’가 생기면서 우리의 ‘우리’는 잠시 접어 두었다. 아마도 10년, 20년 후에는 다시 ‘우리’라고 말하며 재회할 수 있지 않을까. 중학교 2학년 시절에 징그럽게 미워했던 선생님과 서러웠던 체벌을 이야기하며 또 울 것이다. 그 애들 모두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주책이라 눈물이 많다. 나는 예전의 ‘우리’가 아닌 것이 서운하지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애들과 같이 늙어가기로 결심했으니, 지금 사라진 ‘우리’를 기다리는 것도 ‘우리’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너와 같이 늙어가지 못한 것이 아쉽다. 우리의 ‘우리’는 아마 그것으로 끝이었던 것 같다. 긴 인생을 보지 못하고, 청춘이 다인 줄 알고, 짧은 시간에 ‘우리’를 다 써 버린 것이 서글프다. 그러니 너를 만나면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잘 지내냐, 아이는 잘 크고 있느냐, 너도 늙었다, 나도 늙었는데’가 전부이겠지. 혹시 내가 너를 우연히 마주치게 되어 그런 상투적인 말을 쏟아 놓고 어색하게 손을 흔들며 가더라도 섭섭해하지 말았으면 한다.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라서 그런 것이니까. 우연히 너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그런 것을 알려 주는 사람이 내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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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했던가? 나는 유학을 떠난 것이 부끄러웠다. 뭣도 없는 내가, 꿈도 목표도 딱히 없던 내가 프랑스 유학이라니. ‘헛짓거리다, 돈 낭비다’라고 비판하는 이들에게 딱히 대꾸할 말도 없었다. 꽤 오래 후회하고 살았다. 유학을 온 것도, 귀중한 기회를 낭비한 것도, 조금 더 현실적이지 못했던 것도. 서른이 다가오고 쥐고 있는 것은 없었던 그때, 그 모든 후회들이 절실히 다가왔다. 그즈음에 너와 연락이 끊겼다. 나는 내가 ‘나’인 것이 견딜 수가 없어서 타인을 감당할 수 없었다. 지금도 때때로 후회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나였음을 받아들인다. 나는 매번 비슷한 결정을 할 것이고 비슷한 삶을 살 것이다. 여전히 현실적이지 못하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삶을 헤쳐 나가고 있다. 네가 비웃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나는 여전히 꿈을 꾼다. 글도 쓴다. 이 글을 네가 읽을지는 모르겠다. 너무 아픈 비평은 말았으면 한다. 지금의 나는 이런 글밖에 쓸 수 없지만 또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그러니까 그것이 나의 꿈이다. 조금씩 더 나아지는 것.
이제 밤에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잠을 잘 자고 싶다. 하루가 피로하다. 그래서 맹물을 끓인다. 그리고 박완서의 책을 펼친다. 그분은 그리운 게 많아 글을 쓰셨던 것 같다. 모든 문장이 그리움에 맞닿아 있다. 나 역시 그리운 게 많다. 내 모든 밤의 이야기들 속에서 그렇게 끔찍해 하던 나를 그리워하는 모순된 자신을 발견한다.
글을 계속 쓰려고 한다. 그렇게 마음을 먹었지만, 사실은 무섭다. 먹고 사는 일이, 사람들이 읽어 주지 않을까 봐, 창고에 재고로 가득 쌓여 있는 책더미를 마주하게 될까 봐 나는 많이 두렵다. 너도 많은 것을 두려워하고 있겠지. 또 많은 것을 삼켰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함께 나누지 못하고 이제 와서 이런 글을 쓰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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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번의 낮도 너무 좋았는데, 밤 편에서 정말 나를 홀린 산문이 있어서 일부분을 옮겼다. 외로움과 쓸쓸함을 담아 이렇게 따뜻한 편지를 쓸 수 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