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사적인 초능력

장르는 SF 인데 등장인물의 사고방식은 너무나 현대적이다. 누군가에겐 그게 이 책의 매력 요소겠지만 나에겐 아니었다.

인간과 초인

희곡으로 유명한 분인데 묘비명만 알고 희곡은 한번도 읽어본 적이 없어서 사봤다. 등장인물들 - 옥타비우스, 태너, 앤 - 의 캐릭터가 매력적이고 대화도 재치가 넘쳐서 좋았다. 3막에서 니체의 초인 사상을 녹여낸 걸로 유명하다 들었는데 의외로 그 부분은 그저 그랬다. 희곡을 좀 더 많이 읽어보면 인상이 달라질까? 실제 연극으로 볼 수 있다면 좋았을텐데.

웹소설의 충격

요즘 웹소설이 구가하는 인기의 이유와 맥락을 파악해 보고 싶어서 샀는데, 다루는 범위가 너무 일본 웹소설에 한정적이었고 비평이나 분석보다는 마케팅 보고서에 가까운 내용이었다. 절반 정도 읽고 사내에 나눔으로 처분했다.

피프티 피플

병원을 배경으로 50명의 이야기를 모은 소설. 독서 모임에서 같이 읽기로 한 책이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모임 자체가 취소되면서 흐지부지 됐다. 그래도 기껏 빌려왔는데 바로 반납하긴 아까워서 읽기 시작했으나, 1/3 정도 읽고 나니 이 뒤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이어지겠구나 싶어서 덮었다. 내가 몰랐던 새로운 지평선을 열어주는 책이 아니면 흥미가 길게 이어지지 않는 것 같다. 얼마 전에 친구한테 들은 ‘교훈병’ 이란 단어가 생각나네. 음.

수치심

어빙 고프먼의 ‘자아 연출의 사회학’과 함께 읽을 생각이었는데 결국 이 책을 먼저 읽었다. 최근 블로그에 썼던 글 중 여러 편이 이 책의 내용에 바탕을 두고 있다. 심리와 힐링 사이를 오가는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러니까, 주로 김혜남 선생님이 쓰시는 류의) 이 책은 작위적인 힐링 요소도 없고 내용 자체도 매우 흥미진진했다. 또 현재 상담을 진행중인 나에게 꽤 도움이 되는 내용이 많아서 읽는 내내 ‘이건.. 이건 바이블이야..!’ 하고 감탄했었다.

감정화하는 사회

또다른 독서 모임에서 읽기로 했던 책. 마찬가지로 코로나 때문에 모임이 취소됐지만, 애초에 이 책을 발제한 사람이 나였어서 빠르게 구매하고 읽는 중이다. 이 책을 읽고 오쓰카 에이지와 리시올 출판사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생겼다. 서브컬처나 일본 사회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사서 절대 후회하지 않을 책. 각 챕터를 읽을 때마다 트위터에 후기를 잔뜩 남기고 있는데 리시올 공식계정이 좋아요를 눌러줘서 기쁘다.

이지 웨이 아웃

불치병 환자에게 안락사를 추천할 수 있는 961 법안이 통과된 가상의 도시. 주인공 에번은 안락사를 도와주는 어시스턴트로 일하고 있다. 병원에선 안락사를 필요로 하는 환자를 알음알음 찾아내고, 주인공은 이들에게 넴뷰탈을 건네고 모든 과정에 문제가 없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그간 안락사라고 하면 대입 토론면접 단골 주제, 혹은 스위스에 대한 농담 소재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 소설은 꽤 신선한 부분을 짚는다. 작가가 실제로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하는 간호사라서 그런가. 누군가가 자살 충동을 가지고 있다 해도 우리는 그것을 그 사람의 건전한 욕망으로 인정하지는 않는다. 보통은 중증 우울증에 의한 ‘증상’으로 여기지. 그렇다면 안락사 역시, 안락사를 택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을 대할 때 그걸 그 사람의 건강한 ‘의지’라고 여기는 건 위험한 일이 아닌가? 또 안락사 합법화를 주장하는 사람들과 안락사를 원하는 환자, 그 사이에 있는 사람들의 심정은 어떠한가. 나 역시 개발 일을 하면서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있어서 (유저가 컨텐츠 창작자에게 악플을 날릴 때, 이 악플을 전달하는 플랫폼의 책임은 어느 정도인가) 마냥 남 일 같지가 않았다.

진정한 장소

아니 에르노의 말이 궁금했다. 이렇게 내밀하게 자신의 과거사를 말하는 여성은 어떤 생각으로 글을 쓰는 걸까. 짧은 책이어서 금방 다 읽었고 앞으로도 종종 들춰볼 것 같다. 책의 어떤 구절이 너무 좋아서, 공감이 가서라기보다는 여성 작가가 이렇게 명확하게 자신의 가치관을 쏟아내는 게 귀해서.

SF 거장과 걸작의 연대기

아주 위험한 책이다. 내용이 쉬워서 술술 읽히는데 매 챕터가 끝날 때마다 알라딘 장바구니에 책이 두 권씩 쌓이기 때문이다. 다 읽고 나면 장바구니에 SF 만 40권쯤 쌓여있는 건 아닐까. 여튼 요즘 장르문학에 관심을 열심히 기울이고 있는데 SF 입문용으로 좋은 책인 것 같다. 내 지갑에겐 안 좋은 책 같지만. 회사님 제게 힘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