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쓸 수 있을까

작년에 사스미 언니의 추천을 받고 알라딘 보관함에 넣어뒀던 책인데, 막상 구매의 뽐뿌는 오지 않아 보관함에만 넣어둔채 일년이 지났다. 그리고 다른 책 빌리러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발견해 이제서야 읽었다. 결과적으로 책은 참 좋았다. ‘아예 쓰지 않는 것보다 후지게 쓰는 것이 두려웠다’는 문장에 공감 못하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일흔이 넘어도 정체성과 여생에 대한 고민이 끝나지 않는다니 좀 막막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젊은 시절에 호기롭게 고향을 떠나온 사람이 나이 들어선 결국 돌아갈 고민을 하는 게 아, 결국은 이런 건가? 싶기도 했다

당신 엄마 맞아?

텀블벅으로 구매했으니 산지는 정말 오래 됐는데, 작가님의 전작인 “펀홈”도 술술 읽히는 만화는 아니었기 때문에 독서의 각오를 다지는 데만 1년 넘게 걸렸다. 읽는 내내 헛웃음이 계속 나왔다. 어떻게 이런 복합적인 주제와 이야기를 한 덩어리로 다루지? 이 만화의 주된 내용은 작가 본인이 정신 분석을 받았던 경험과 직접 공부한 정신 분석 이론들이다. 독자는 앨리슨 백델이 위니캇과 프로이트와 그 외 다양한 정신 분석 이론가들의 문헌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자신의 내면 세계를 파헤치는 여정을 따라가게 된다. 무려 300쪽 가까이 되는 분량과 고밀도로 압축된 텍스트를 통해서. 이 책은 ‘만화로 보는 도널드 위니캇의 정신 분석 이론’ 부제가 붙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만큼 정신 분석 이론을 깊게 다룬다. 또 작가와 엄마 사이의 갈등이 메인 테마이긴 하지만, 그 갈등은 소설처럼 선형적인 서사를 가지는 게 아니라 거미줄처럼 여기저기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한두줄로 요약 설명도 불가능하다. 작가도 애초에 자신과 엄마의 갈등을 서사 구조로 전시하고자 하지는 않은 것 같고. 힘겹게 따라간 끝에, 맨 마지막 장의 내용에서 눈이 번쩍 뜨였다. 위니캇의 이론에 따르면, 아기가 자기 자신과 어머니를 별개의 존재로 보지 못하면 아기는 그저 어머니를 ‘이해’하기만 한다. 하지만 아기는 언젠가 어머니를 자기 뜻대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용’하는 능력은 후천적으로 길러지는 것이기에 어머니가 직접 가르쳐야 하는데, 이 과정을 거치지 못하면 아기는 자신의 감정과 어머니의 감정을 분리해서 보지 못한다. 이것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길, ‘주체(아기)는 언젠가 대상(어머니)를 파괴해야 하고, 대상은 파괴로부터 살아남아야 한다’고. 마지막 장에서 갑자기 머리를 꽝 맞은 덕에 위니캇의 책을 직접 읽고 싶어서 찾아봤는데, 정말 너무 이론서 뿐이라 관뒀다.

퀴어돌로지

이 책은 제목과 표지서부터 안 살 수 없었다. 분명 아주 멋지고 다채로운 내용이 잔뜩일거야!! 하면서 샀는데, 기대치가 너무 컸던 탓인지 엄청나게 만족스럽진 않았다. 내가 레즈비언 당사자가 아니고 얼로섹슈얼도 아니기 때문에 다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이 분명 있겠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내 기대보단 글이 주관적이었다. ‘이건 좀…’ 과 ‘그래도 이건 꽤 괜찮은 시각이군’ 이 번갈아 반복되다가, ‘팬덤 내에서 팬들이 서로 우애 깊어지는 모습이 버추얼 레즈비언 적’이라는 분석에서 멈칫했다. 헤테로 에이섹슈얼이자 케이팝 러버인 사람으로서는 글쎄. 동성 간의 유대라고 꼭 그 의미는 아니지 않을까요? 이렇게 연결시킬 거라면 좀 더 엄밀한 전개 과정이 필요한 거 아닐까 싶었다. 또 아이돌의 외적 요소를 갖고 마음대로 캐해 붙여서 팬픽을 쓰는 것에 대해 ‘원래 인간 관계는 그런 면이 있다’는 설명으로 퉁 치는 것도 동의하기 힘들었고. 그치만 김효진 교수님 글에선 아주 편안해졌다. 역시 교수님 최고.

점점 자신 있는 한글 점자

점자에 관심이 생겨서 책을 샀고, 한달 바짝 공부했고, 9월엔 또 손을 놨다. 이제 기본적인 한글은 다 점자로 쓸 수 있는데 쓰는 속도가 아주 느리고, 타자 치는 속도는 열 배쯤 더 느리고 아직 아라비아 숫자나 알파벳은 근처에 가보지도 못했다. 언젠간 점역교정사 자격증도 따 보고 싶은데, 일단은 아주 먼 미래로 미뤄뒀다.

여자력

AJS 작가님이 참여한 책을 그냥 다 사고 있다. 여성 캐릭터와 초능력이 등장한다는 것 외에는 공통점이 없는 다섯 편의 단편 만화가 실렸고, 모든 편이 재밌었지만, 떡볶이 배달 오토바이가 창문 깨부수는 신으로 시작하는 단편이 제일 강렬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

요즘 이런 정신질환에 관련된 책이 많이 나오는데, 이 책은 제목에 정확히 부합하는 가이드북이다. 가족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 질환에 따라 어떠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고, 각 증상에 따라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은지를 알려주는 가이드북. 한 권의 책으로서 재미가 있다기 보다는 구급상비약처럼 펼쳐보게 되는 책. 의외로 내용 자체는 오은영 선생님의 “금쪽같은 내 새끼”와 통하는 면이 있다. 감정적인 사람을 상대할 때 ‘진정해 봐라’ 같은 말은 안하느니만 못하다는 문장을 보고 깊게 반성했다.

나는 흑인이다, 나는 흑인으로 남을 것이다

이번 학기에 수강하는 “제3세계의 문화와 역사” 의 중간과제를 위해 읽었다. 앞의 절반은 에메 세제르와의 대담으로,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대담을 마친 베르제의 후기로 이루어져 있는데 후기가 너무 어렵다. 너무너무너무 어렵다. 번역도 그다지 매끄럽지 않고, 전문용어를 남발하면서 제대로 해설도 해주지 않아 눈이 핑글핑글 돌아갔다. 포스트 식민주의가 당최 뭐냐구요. 결국 대담 부분만 읽고 과제를 끝냈다. 에메 세제르는 마르티니크의 자치권을 위해 오랫동안 활동해온 운동가이자 학자다. 마르티니크는 북미 대륙과 남미 대륙 사이에 위치한 자그마한 섬으로, 한때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았고 지금은 프랑스의 해외도로 지정되어 있다. 식민 지배 당시 원주민들을 쫓아내고 흑인 노예들을 아프리카에서 데려와 그곳에 정착시켰기 때문에 지금의 마르티니크 주민은 대부분 흑인이다. 하지만 마르티니크 주민들은 프랑스 국민으로서 자신들은 흑인들과는 다르다는 계급 의식을 갖고 있고, 그와 동시에 이 곳은 프랑스의 원조 없이는 사회 유지가 불가능할만큼 가난한 지역이기도 하다. 그래서 세제르는

  1. 식민 지배는 결코 경제적 보상으로 퉁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여기엔 도덕적 의식이 필요하며
  2. 프랑스에 경제적으로 기대는 것과 별개로 마르니티크는 자립을 꿈꿔야 하고
  3. 자립을 꿈꾸지 않는다는 점에서 식민 지배의 책임은 피지배국 에게도 있으며
  4. 디아스포라의 원천인 아프리카와 흑인 정체성을 다시 들여다볼 것

을 강조하고 있다. 대담 내용은 정말 좋았는데, 책의 절반에 달하는 후기를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고 책을 반납한 게 너무 아쉽다.

벤야멘타 하인학교

로베르트 발저의 “산책자”를 좋아했어서, 도서관에서 별 생각없이 작가의 다른 책을 빌려봤다. 재미 없기가 힘든 내용이었다. 책 첫 문장이 무려 “우리는 여기서 배우는 것이 없다.” 로 시작해서 “내면의 성공이 무슨 소용인가? 내면에서 이룩한 것들이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기라도 하는가? 나는 정말이지 부자가 되고 싶다.” 로 이어지기 때문. 책 전체가 이런 내용이다. 주인공은 이 하인학교의 가치관과 교육에 아주 뿌리깊은 회의를 느끼고 있고 비효율적이고 권위적인 모든 것들을 싫어한다. 그와 동시에 그런 예절을 몸 속 깊이 내면화하는 사람들을 존경하기도 한다.

중학생 때 읽었다면 꼭 인생 책을 찾은 것마냥 감동 받았을 텐데, 이제는 이런 시스템-해체-반항아 적인 텍스트는 재미는 있되 좀 진부하다. 예를 들어 “우리가 무언가를 이해하게 되면 그땐 그것이, 말하자면 우리를 소유하게 된다” 라던가, “대중, 그것은 현대판 노예다. 그리고 개인은 굉장한 집단 사고의 노예지.” 같은 문장. 예예 다 맞는 말이죠 맞는 말인데 이미 다른 데서 한번씩 읽어봤다구요. 왠지 “데미안”이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같은 책에 똑같은 문장 있을 거 같고 막. 그래도 끝까지 읽은 건 다 작가의 재치 덕분이다. 유머마저 없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부디, 얼지 않게끔

한다리 건너 알게 된 지인이 소설을 냈다! 읽어봐야지 하고 알라딘 장바구니에 넣어뒀다가 얼마 전에 드디어 구매했고, 책이 얇아서 읽는 데는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여행사에서 가이드로 일하는 주인공이 어느 날 자기도 모르게 변온동물이 됐다는 설정으로 시작하는 SF 인데, 가이드라는 직업 특성상 베트남-제주-홋카이도-서울로 공간 배경이 계속 바뀌고 이에 따라서 주인공의 컨디션도 극명하게 달라진다. 여름의 베트남에서 다른 사람들 모두 기절할듯이 땀을 흘리고 있는데 주인공은 혼자 너무 편안하고, 홋카이도에선 모두가 진한 보라색의 라벤더 아이스크림을 손에 쥐고 즐거워 하는데 주인공은 혼자 삶의 위기를 느낀다. 그리고 겨울이 오자 이불과 패딩과 전열기구를 한껏 끌어안고 동면에 들어간다. (진짜다!)

각 지역에 대한 묘사가 너무 생생해서, 이건 분명 직접 가보신 거다 여행 또 가고 싶은 마음을 담아서 쓴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ㅋㅋ 변온동물이 된다는 설정 못지않게 주인공의 직장 동료인 ‘희진’의 캐릭터가 판타지 스러웠다. 아니 어떻게 직장 동료랑 단둘이 출장 갔다가 이렇게 짝짜꿍 잘 맞는 친구가 될 수 있어요. 운동 취미도 맞고 거리감도 적절하고, 변온동물이 됐다는 엄청난 고민까지 공유할 수 있는 사이라니. 그게 직장 동료랑 가능해요? ㅜㅜ

회사인간, 회사를 떠나다

“북저널리즘” 이라는 시리즈를 우연히 서점 갔다가 알게 됐다. 주제 하나로 한 권의 책이 나오는데, 두께도 꽤 얇고 주제들도 아주 흥미로워서 가장 재밌어 보였던 주제 세 개를 골라 구매했다. 그리고 첫 시작으로 이걸 읽었다.

이 책에서 ‘회사인간’이란 1950년대 초반-후반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개인의 성장이 곧 기업의 성장이고 나라의 성장이라고 주입받던 경제성장 시기에 조직 생활을 했기 때문에 회사에서의 공적 자아를 자기 정체성의 큰 뿌리로 삼고 있다.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 보이면 경쟁에서 도태되는 사회에서 오랜 기간 살아왔기 때문에 공감 능력이 약해져 있고, 술자리를 통해 일시적 유대를 형성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이들은 퇴직 이후에도 동년배를 찾아 끊임없는 술자리를 가진다. 이제 다른 거 필요 없고, 친구와 술자리만 있으면 행복하다며 자신의 소박한 성품을 광고하는 건 덤이다.

이들은 공적 자아의 상실을 견디기 어렵기 때문에 퇴직 이후에도 사회에 보탬이 되는 (혹은 보탬이 된다고 본인이 믿는) 도덕적인 일을 찾아 나선다. 또 기존에 갖고 있던 지위와 퇴직 후의 낙차를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에 이전에 갖고 있던 것을 ‘자기 분수에 맞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 좀 후련하고 마음이 편하다’고 표현하는 화법을 쓰기도 한다. 이는 자원의 축소로 인한 비자발적, 수동적 적응이 아니라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소박함의 정체성을 획득하고자 함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꼰대로 불리는 것을 가장 경계하기에 자신의 과거를 축소하기도 하고 (= 나땐 편하게 살았지 요즘 젊은이들이 더 힘들어보여) 멘토의 이미지를 차용하기도 한다. 새로운 흐름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의 과거를 취사선택해서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그런데 과연 이게 베이비붐 세대에 국한된 이야기일까? 난 사실 내 얘기일 거라 생각해서 구매했고, 읽는 내내 좀 찔렸다. 나도 술자리 유대감 좋아하거든. 강한 배타성을 갖는 남성들 간의 유대 맞지. 맞는데, 그런 남성들 간의 유대에 여성 개인이 비집고 들어가려면 술이랑 담배 밖엔 방법이 없는 걸 어떡해요. 그리고 공적 자아도. 아니, 회사의 성과를 내 일처럼 뿌듯해 하는게 그렇게 이상해요? ㅜㅜ

휘슬이 울리면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에서 구매했던 책. 남자축구팀에 비해 성적이 더 좋은데도, 예산을 한 쪽에만 써야 하는 상황이 되자 리그에 출전하지 말 것을 강요 받는 여자축구팀의 이야기. 심지어 여자축구팀 단원들이 직접 발로 뛰며 홍보해서 스폰서를 구해 오자 스폰서를 도로 돌려보내며 ‘여자 팀에만 스폰서가 있으면 남자 팀 애들은 기가 죽을 거 아냐!’ 라는 어마무시한 소리를 한다. 그래서 주인공이 다 찢어버리고 다 박살내고 나오는 장면이 제법 통쾌하다.

몸을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여성 캐릭터들이 잔뜩 나온다. 색감도 아주 원색적이고 예쁘다. 다만 결말은 상당히 현실적이기 때문에 사이다 엔딩을 원한다면 취향이 아닐 것이고, 남자애들이 정말 하찮고 등신에 머저리라는 점을 꾹 참고 봐야 한다는 허들이 있다.

어느 날 로맨스 판타지를 읽기 시작했다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웹소설 독자는 누구인가’ 세션을 들었다가 김휘빈 작가님의 추천을 듣고 구매하게 된 책. 두께도 얇고 내용도 너무 무겁지 않게 알차다. 로맨스 장르는 여성의 욕망을 반영한다 - 이건 이제 너무 익숙한 문장이라 머릿속에 법칙처럼 새겨져 있지만, 육아물의 흥행을 남자주인공에 대한 불신과 연결시킨 건 신선했다. 서양 근대를 바탕으로 한 로판 세계관에서 여성 캐릭터가 활약하려면 여전히 가부장제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젊은 남주는 어쩐지 그 대가로 성적인 걸 요구할 거 같으니 그 대체제로 아버지를 쓰는 거라는 분석이었다. 결국 젊은 남주든 아버지든 남성 캐릭터는 이 장르에서 서사를 완성시키기 위한 도구로서만 기능한다는 게 웃기기도 하고.

또 악녀 여주가 자기 밑의 시녀/하녀를 권력 구도 역전의 첫 발판으로 쓰며 짓밟는 서사가 그간 참 불편했는데 - ‘주인공 최고다 사이다다 어딜 감히 하녀가’ 같은 댓글 잔뜩 달린 거 보면 마음이 천근만근 이었는데 - 가부장제 구조에서 여성의 권력은 공식적이지 않다는 점을 책에서 지적해 줘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악녀 여주는 대체로 집에서 학대/냉대를 받는 설정이기 때문에 비공식적인 권력조차 전혀 쥐지 못한채 출발하고, 이러한 대우가 부당하다는 사실을 하녀나 시녀에게 직접 증명해야 하는 위치에 놓여 있다. 따라서 주인공의 진짜 목표는 하녀나 시녀 개인이 아니고, 가부장제의 권력 구조 아래서 사적인 권력을 획득하는 기초 연습을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런 서사를 위해선 하녀/시녀가 반드시 주인공에게 한차례 악행을 저지른 후여야 하고 (ex. 학대에 동참했다던지) 그런 전개 없이 주인공이 지나친 폭력을 휘두르면 독자들은 이 하녀/시녀 캐릭터에게도 공감을 하기 때문에 반발이 아주 거세다 - 는 분석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건 다 듣고 보면 맞는 말인데 왜 스스로는 생각해내기가 어려운지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