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 밸리의 목소리

가볍고 얇고 두 시간 안에 다 읽을 수 있다. 실리콘 밸리에서 일하는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을 인터뷰한 내용으로 모두가 익명으로 참여했다. 덕분에 대외비나 발설 금지 조항 따위에 개의치 않고 자신이 느낀 업계의 모습을 가감없이 전달하는 게 느껴진다. 또 이 업계를 개발자 직군이 과대표하도록 두지 않고 요리사, 마사지사 등 함께 일하는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많이 담은 것도 좋았다.

하지만 가장 공감이 갔던 건 이 페이지.

산수화가 만든 세계

조규희 교수님의 열렬한 팬인 한 친구의 끈질긴 추천으로 구매했다.

산수화가 자연을 그렸다는 점에서 순수하다고 여겨지기 쉽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았다. 어떤 자연을 ‘아름다운 자연’이라고 칭송할 것인가, 그림 안에 어떤 메시지를 담을 것인가, 그림을 향유하는 이에게 어떤 가치를 부여할 것인가 등 산수화 장르를 구성하는 많은 질문들이 당시의 이데올로기와 지배 계층의 영향을 받았다. 또 사회가 그림에 영향을 미치는 것뿐만 아니라 반대로 그림이 사회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가령 금강산은 고려 시대 때부터 이미 한반도의 절경으로 소문이 나 있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 당연히 - 금강산에 직접 가보지는 못하고 산수화를 통해 금강산의 미를 즐겼다. 그래서 산수화를 그린 이가 그림에서 어디를 강조하고 어디를 묘사했는지가 사람들이 금강산의 미를 인식하는 방법에 고스란히 영향을 미쳤다. 사람들은 실제로 기회가 생겨 금강산에 가게 돼도 자기만의 고유한 풍경을 찾아내기보단 ‘산수화에서 봤던 바로 그 풍경’을 찾아내 그것을 찬미하곤 했다. (물론 고유한 풍경을 찾아낸 사람도 있다. 바로 자기가 정의한 미(美)로 대중의 인식을 전환하고 싶었던 슈퍼-지배-계층들이다.) 이 사람들이 집에 돌아와 자신의 금강산 유람 후기를 시로 남기고, 그걸 접한 또다른 누군가가 금강산으로 향하고, 이런 순환 구조로 미학 이데올로기가 전파된 것.

작고 가벼운 책이라 금방 술술 읽었다. 예술이 사람들의 인식에 비해 훨씬 정치적인 영역이란 걸 말해준다는 점에서 『미술관이라는 환상』 이 생각나기도 했고. 잘 몰랐던 산수화 화가들을 많이 알게 돼서 그 점도 좋았다. 이 책을 통해 조희룡을 알게 돼서 『우봉 조희룡』 도 사뒀는데 내년엔 읽겠지.

평범한 인생

학창시절 자주 가던 서점 “우분투북스” 의 블로그를 구독 중인데 사장님 추천으로 올라온 책 중 요게 눈에 띄었다. 카렐 차페크라는 이름에 혹했기 보단 사장님의 소개글이 맛깔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카렐 차페크의 책은 대표작인 『R.U.R』 밖에 읽어보지 않았다. 로봇이란 단어가 최초로 등장한 문학 작품이라기에 호기심으로 잡았는데, 나쁘진 않았지만 작가의 다른 작품을 찾아볼 만큼 흥미롭지도 않았다. 그런데 요 근래 그가 쓴 수필이나 소설 번역본이 자주 눈에 띈다. 『정원가의 열두달』 도 그렇고. 기념비적인 일이라도 있었나.

소설은 한 노인의 죽음을 알리며 시작된다. 평소에 노인을 알고 지냈던 청년 한 명과 또다른 이웃 노인네가 대화를 나눈다. 그래도 그 양반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이었지, 정도의 감상이 남는다. 그러다 죽은 노인이 자서전을 남겼다는 걸 알게 된다. (이웃 노인네는 ‘건강도 안 좋은 사람이 그런 거에 골몰하니까 더 빨리 간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극중극의 형태로 노인의 자서전 속 이야기가 펼쳐진다.

전반부에선 자신의 유년기와 청년기, 결혼 생활과 노년기에 대해 쭉 늘어놓는다. 그리고 후반부에선 전반부에서 설명했던 일련의 사건들을 다시 재배치하며 자아의 본질을 탐색해 간다. 솔직한 감상으론 전반부가 훨씬 재밌었고 후반부는 정신이 아찔했다. 오 이런. 지금 ‘A 로서의 나’와 ‘B 로서의 나’ 같은 구분선 그은 다음 과연 진정한 나는 이 중 무엇일까 고찰하는 거에요? 이렇게 재밌고 위트 있는 전반부 보여 줘놓고 후반부가 이거라고? 뒷내용의 자아 찾기에 대한 거부감이 너무 강력해서 결말이 어떻게 났었는지 기억도 안 나네.

자전거를 타면 앞으로 간다

이 책의 제목을 친구들한테 보여주면 열이면 열, 고이즈미 신지로 밈 같은 제목이네 하고 어리둥절해 했다. 사실 나도 그랬다. 근데 최근에 자전거 타는 친구에게 이 책을 보여줬더니 ‘그렇지, 자전거는 후진이 안되거든’ 하고 새로운 관점을 말해 줬다. 난 전혀 몰랐다. 아니 자전거가 후진이 안된다는 걸 몰랐다는 게 아니라 그런 방향으로는 아예 생각을 안해봤다. 친구가 책에서 제목에 대한 설명을 따로 안 해줬냐고 묻길래 없었던 것 같다고 대답했는데 확신이 없다. 분명 다 읽었는데. 이… 있었나요?

가볍고 얇고 예쁜 책이라 여행길에 금방 다 읽었다. 이런 책은 자전거를 한 30분이라도 탄 다음에 읽어야 더 재미질 텐데, 요즘은 날씨가 너무 추워서 감히 엄두도 못 내겠다. 사실 핑계다. 애초에 난 자전거 타고 직진만 할 줄 알지 커브길은 잘 못 돈다. 직진도 아마 능수능란하진 않을 거다. 날씨 이전에 내 몸이 문제야. 봄 되면 따릉이라도 타고 다녀야지.

황현산의 현대시 산고

『황현산의 가벼운 산책』 을 읽고 구매했던 책. 확실히 에세이집과 문학비평집의 난이도는 다르더라. 특히나 비평 분야가 시라서 더 어려웠다. 이번 학기에 “영미시” 과목 들으면서도 느낀 거지만 시는 해설이 없으면 아무 것도 캐치할 수 없다. 분명히 시 원문을 한번 읽고 해설 파트로 넘어왔는데 해설을 읽다 보면 그렇게 생경할 수가 없다. 내가 아까 읽은 내용이 그런 거였다고? 난 그냥 자연이 예쁘다고 하는 건줄 알았는데? 번역된 외국 시면 한층 더 난이도가 높다. 원문을 봐야 시인이 의도했던 문장의 배치, 생김새나 운율을 알 수 있고 번역된 버전은 또 완전히 별개의 시니까.

아직도 시를 즐기는 법은 잘 모르겠다. 물론 이런 말을 하면 시를 좋아하는 분들은 ‘너무 어렵게 생각할 거 없다, 느껴지는대로 느끼면 그 나름의 감상이 된다’는 답변을 해주겠지만 전 그 말에 만족할 수 없단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