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슬

『더 퍼스트 슬램덩크』 를 영화관에서 일곱 번 보면서 운동의 재미에 눈을 떴다. 영화에 대한 감상평은 다른 글에서 쓰게 될 테니 여기선 생략하자. 요즘의 나는 달리기와 클라이밍을 한다. 그리고 서점에 들르면 스포츠/운동 코너를 기웃거린다. 이전의 나라면 스포츠/운동 코너는 존재를 인지조차 못했을 텐데, 이제는 그 코너에서 책을 한 권 한 권 뒤적이는 단계에 이르렀다. 잡지 『휘슬』 은 그렇게 발견했다.

『휘슬』 은 운동 자체에 대한 잡지라기 보다는 일상을 운동과 엮어서 바라보고자 하는 잡지에 가깝다. 1호인 『LONG RUN』 은 달리기를 좋아하는 필진들이 각자 자신의 달리기에 대해 썼다. 정직하게 달리기 취미와 그 근황에 대해 쓴 분이 있는가 하면 달리기를 글감으로 경유해서 자기 커리어에 대해 이야기하는 분도 있었다. 2호인 『TRANSITION』 에 오면 글이 뻗어가는 방향이 더욱 다양해진다. 표지엔 농구공과 림의 사진이 실려 있고 실제로도 농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로 글을 썼으나 농구에 대해 썼다기 보단 농구를 통해 자기가 겪은 전환에 대해 썼다. 그리고 농구와 전혀 무관한 글도 다수 실려 있다.

포지션이 애매하다면 애매한 잡지인데 나한텐 꽤나 잘 맞았다. 운동을 메인으로 다루는 잡지였으면 필진들을 동경은 할지언정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며 읽었을 테고, 운동을 통해 삶이 바뀌었다는 긍정 파워 간증 모음집이었다면 오히려 거부감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잡지는 그저 다양한 방식으로 운동을 곁에 두고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하나의 테마로 엮었을 뿐이라 훨씬 더 읽는 재미가 있었다. 발간된 건 3호가 마지막이고 이후가 없던데 간간이 소식을 찾아볼 예정.

고양이 행성의 기록

어느 북 페어에서 구매한 소설. 알라딘과 트위터를 검색해도 후기가 별로 나오지 않는데 그럼에도 이 책을 구매한 건 표지 때문이 8할은 된다. 대체 무슨 기술로 이런 색을 뽑았을까 궁금해지는 새-빨간 컬러와, 그에 몹시도 대비되는 부드러운 질감. 이 질감은 문장으로 설명하기가 너무 어렵다. 그리고 도무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귀여운 제목. 하지만 책의 배경은 제목만큼 귀엽지 않다. 이 책은 1930년대 중국에서 쓰인 디스토피아 SF 소설이고, 작가 라오서는 사회 비판과 항일에 뜻이 있었던 소설가였다. 책 날개에는 그의 일생이 어떻게 끝났는지 짧게 쓰여 있다. 그는 1966년 문화대혁명 시기에 홍위병들에게 심한 모욕과 구타를 당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책의 내용도 맵기 그지없다. 주인공은 우주선 사고로 인해 묘인들의 행성에 불시착한 인간인데 묘인들은 외국인을 숭상하는 기이한 풍습을 갖고 있다. 그리고 미혹나무 잎을 주식으로 먹는다. 미혹나무 잎을 먹으면 순식간에 배가 부르고 몸이 나른해지는데, 이런 축복받은 음식을 갖고 있는 묘인은 대단한 민족이라고 자기들끼리 이야기한다. 미혹나무 라는 이름에서 거의 떠먹여준 거나 다름없지만 혹시나 못 알아들은 독자가 있을까 걱정이라도 됐는지, 작가는 미혹나무에 매달리며 빠르게 망가져 가는 묘인들을 계속해서 묘사한다. 당연히 이는 아편에 대한 은유다. 작가는 묘인을 경유해 당시 아편의 여파에 시달리던 중국인들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자국을 다루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시니컬하고 블랙 유머가 가득해서, 무척 재밌는 동시에 ‘그 당시에 이런 걸 써도 괜찮았던 건가’ 하는 뒤늦은 걱정이 따라오는 책이었다. 또한 일본 제국주의를 비판한다거나 당시 지배층을 비판한다거나 하는 하나의 단일한 메세지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그 모든 게 뒤섞여있는 망국의 분위기를 있는 그대로 그리고 있어서 그 점도 신선하고 매력적이었다.

쇳밥일지

지방에서 공장을 전전하다가 용접공으로 자리 잡은 30대 청년의 에세이집. 읽는 내내 하마글방에서 자주 듣던 표현이 생각났다. ‘세상에 이런 글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 경기-서울 중심으로, 4년제 대학 졸업자 중심으로 이뤄지는 청년 담론은 문제가 있고 그 바깥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비판은 이미 많이 나왔다. 그런데 그 비판조차 경기-서울의 4년제 대학 졸업자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한계였다. 결국 당사자의 발화와 구체적인 요구사항이 이 담론과 연결되어야 하는데 그 중간다리 역할을 해줄 사람이 늘 부족했다. 하마글방에선 페미니즘 이야기를 할 때 이런 대화를 자주 나눴었다. 연구자들의 학술적인 페미니즘도 좋고 멋진 여성들의 임파워링 내러티브도 좋은데, 그것 외에도 얼마나 다양한 층위가 있는지 더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면 좋겠다고. 모두들 각자가 속한 사회의 전달자가 되면 좋겠다고.

이 책은 재밌고, 잘 쓰였고, 이 책이 아니었다면 독자가 접하기 어려웠을 경남 지방 - 제조업 공장의 - 청년 이야기를 매끄럽게 전달한다. 독자의 이해와 작가의 삶 사이에 간극이 큰 만큼 글을 많이 다듬어야 했을 텐데 어쩜 이렇게 잘 쓰셨을까 싶을 정도로 좋은 책이었다. 개인적으론 경남 사투리도 몹시 반가웠다.

카메라를 끄고 씁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 를 만든 양영희 감독의 에세이집. 『수프와 이데올로기』 에 대해서는 작년 4분기 영화 정산에서 썼다. 양영희 감독의 가족사는 그 자체로 한국의 근현대사를 꿰뚫고 있고 감독은 이미 세 편의 영화로 이 이야기를 했다. 그러고도 카메라에 미처 다 담지 못한 이야기를 에세이로 썼다고 해서, 다큐멘터리를 보자마자 책을 알라딘 장바구니에 담아 뒀었다.

영화도 좋았지만 책은 역시 영상과는 또다른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몇몇 편의 에세이는 왜 이걸 영상에 담지 못했는지 이유가 명확해서 (북한에 캠코더를 들고 들어가는 자체가 위험 부담이 있는 일이므로) 더더욱 이 가족을 둘러싼 섬세한 정치성을 실감할 수 있었다. 책이 얇고 글자도 큼직큼직하게 나온 편이라 반나절 만에 다 읽었다.

가족을 구성할 권리

친구가 추천해 줘서 이 책을 처음 알게 됐다. 그러나 나나 그 친구나 자기 취향에 대한 고집이 참 확고해서, 단지 그 친구가 추천해 줬다는 이유로 책을 구매할 생각은 없었다. (우린 늘 서로에게 닿지 않는 추천을 하고 있다.) 그런데 우연히 방문한 서점의 가판대에 이 책이 있었다. 몇 장 읽어볼까 싶어 집어들었는데 서점 사장님이 헐레벌떡 달려와 “그 책 너무 좋아요! 저 이 책방에서 독서 모임 운영하는데 다음 달에 그 책 읽으려구요!” 하고 외치셨다. 그런 말을 들었는데 구매를 안하기는 아무래도 힘들어서, 결국은 나도 구매를 하게 됐다.

나 또한 이 책을 독서 모임에 들고 가서 사람들과 같이 읽었는데 그 모임에선 마냥 호평만 나오진 않았다. 이 책이 너무 급진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 분도 있었고,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의 주장이 너무 관념적이라고 느꼈다. 가족 구성권이라는 개념은 좋은데 이걸 갖고 내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달까. 당장 이 책을 갖고 어떤 논의를 해야 좋을 지도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서점 사장님은 이 책을 갖고 어떤 독서 모임을 꾸리셨을까.

비평가 / 눈송이의 유언

후안 마요르가의 극본 두 편이 실린 희곡집. 트위터에서 『비평가』 의 대사 한 줄을 봤는데 인상적이었고, 작년의 『햄릿』 이후로 연극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어서 스르륵 구매했다.

『비평가』 의 등장인물은 두 명 뿐이다. 극작가인 스카르파와 비평가인 볼로디아. 스카르파는 현재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인정 받는 대작가다. 오늘은 스카르파가 대본을 쓴 새 연극이 개막하는 날이다. 스카르파의 연극은 청중으로부터 15분간 기립박수를 받았다. 볼로디아도 오늘 그 연극을 봤다. 하지만 볼로디아는 극이 끝나자마자 커튼콜이고 기립 박수고 다 무시하고 뛰쳐나와 비평을 쓰기 시작했다. 이건 그의 루틴이다. 비평을 다 쓰고 나면 신문 기자에게 전화로 내용을 읊어준다. 그러면 다음 날 신문에 그 비평이 실린다.

이 루틴을 스카르파도 안다. 볼로디아는 십년 전에도 스카르파의 연극을 보고 비평을 썼고 그 비평은 지금까지도 스카르파에게 잊을 수 없는 좌절로 남아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볼로디아는 스카르파를 전적으로 믿었기 때문에, 이 사람은 꺾이지 않고 계속해서 창작을 하리라 믿었기 때문에 그 비평을 썼다. 여하튼 볼로디아는 오늘도 눈썹 휘날리게 비평을 쓰고 있다. 그런 볼로디아의 집에 스카르파가 찾아온다. 기립박수를 받아야 할 주인공이 박수를 마다하고 비평가의 집에 찾아왔다. 그리고 둘은 격렬한 토론을 벌이기 시작한다. 연극이란 무엇이고 비평이란 무엇인가.

… 이 도입부까지 읽었을 땐 이 희곡이 내 취향임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는데 막상 끝까지 다 읽었을 땐 살짝 삐걱이는 지점이 있었다. 이 토론의 분위기가 전환되는 지점이 있는데, 스포일러 라서 말할 순 없지만, 한 개인의 내밀한 사생활이 드러나면서 토론의 방향성이 바뀐다는 게 영 취향이 아니었다. 그 외엔 다 좋았는데. 하지만 ‘그 외’ 라고 말하기엔 이 전환점이 너무나 중요한 지점이라 과연 좋았다고 말해도 괜찮을지 잘 모르겠다. 전체를 다 읽은 후의 감상이 발췌된 문장만 읽었을 때의 감상보다 뒤처질 때는 어째야 하는 것일까.

게임 : 행위성의 예술

『가족을 구성할 권리』 와는 또다른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은 책. 이미 작년 회고를 쓸 때 이 책의 내용을 일부 차용했었다. 하지만 완독한 건 올해 1분기니까 여기에 끼웠다. 이미 출간됐을 때부터 트위터에서 호평을 많이 들은 책이었고, 나도 아마 『휘슬』 이 없었다면 이 책을 1분기의 책으로 꼽았을 것이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게임하는 자신을 방어할 때 흔히 ‘작품성’, ‘예술’ 등의 단어를 꺼내 든다. 그리고 반대편에서, 게임의 부정적인 면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어김없이 ‘중독’ 이라는 단어를 꺼낸다. 이 두 집단은 서로에게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마주치지 않는 평행선의 대화를 하고 있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자신이 게임을 좋아하기 때문에 중독 담론을 적극적으로 부정하기 어렵고, 게임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은 그 자신이 게임의 재미를 모르기 때문에 게임의 예술성에 동의할 수 없다. 애초에 예술성이란 증명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 이 매체는 이러이러한 특성을 갖고 있으므로 예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주장은 아무래도 설득력이 떨어질 것이다.

이 책은 두 집단의 가교 역할을 자처한다. 저자는 게임이 예술에 속한다고 굳게 믿고 있고, 게임이 다른 예술에 비해 갖는 차별점도 있으며 게임이란 예술을 향유함으로써 우리가 얻는 것도 명확하다고 말한다. 그에 대한 철학적 근거도 갖고 있다. 게임을 왜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살포시 내밀면 좋을 책. 물론 이 책이 다루는 게임은 온라인 게임뿐만이 아니라 스포츠, 보드게임, TRPG 까지 포괄한다는 걸 미리 알고 보면 더 좋을 것이다.

더불어, 이 책으로 독서 모임을 하는 내내 모임원들과 각자가 즐기는 게임에 대해 얘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 슬램덩크와 농구도 오랫동안 우리의 화두였고 (“산왕전 지고 엉엉 우는 우성이는 메타 목적인 즐기기에 실패한 걸까? 이것은 가치 포획일까, 아니면 그 분함마저도 게임의 재미에 포함되는 걸까?”) 『로드 오브 히어로즈』 는 과연 어떤 미적 분투를 가능케 하는지에 대해 얘기하는 과정도 재밌었다.

플레이리스트 - 음악 듣는 몸

『고양이 행성의 기록』 과 동일하게 북 페어에서 구매한 책. 플레이리스트 라는 문화의 이모저모를 다뤘다. 플레이리스트 문화의 탄생부터 시작해서 플레이리스트를 제작하는 사람들과 스트리밍 플랫폼에 대한 고찰, 플레이리스트를 통해 음악을 즐기는 소비자의 경험, 그것이 역으로 어떻게 음악 산업에 영향을 미치는지 등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저자의 논문을 단행본 형식으로 엮었다는 점, 매체 소비자의 ‘능동적 수동성’ 과 그로 인해 생겨나는 미적 경험을 다뤘다는 점 등은 위의 『게임 : 행위성의 예술』 과도 유사한 부분이 있었다.

나는 그간 스트리밍 플랫폼에서도 꿋꿋이 곡 단위로 감상하는 편이었는데, 슬램덩크에 빠지면서 플레이리스트 문화에도 같이 입문하게 됐다. 세상엔 2차 창작으로 음악 작곡을 하는 사람도 있고 캐릭터를 해석하면서 플레이리스트를 만드는 사람들도 있더라. 플레이리스트를 만드는 경우 제작자가 생각했을 때 그 캐릭터에게 어울리는 음악을 묶어놓는 경우도 있고, 이 캐릭터가 작중에서 들었을 법한 음악을 묶어놓는 경우도 있었다. 양쪽 다 내게는 흥미로운 문화였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 플레이리스트들에 대해 생각했다. 물론 이 책에서 주로 다루는 플레이리스트는 유튜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뉴욕 카페 감성 플레이리스트’ 같은 것이라 서브컬처에 접목시켜 읽기는 좀 어려웠지만.

플레이리스트 문화를 톺아보는 자체가 신선하고 재밌었지만, 개인적으론 ‘이제 좀 재밌어지는 거 같은데’ 싶은 지점에서 책이 끝나서 아쉬웠다. 좀 더 길고 자세하게 파고 들면 좋겠는데 여기서 끝이에요? 1.5배 분량의 개정판이 나와주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