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4분기 책 결산
퀴어 이론 산책하기
『게임: 행위성의 예술』을 같이 읽었던 독서 모임에서 마지막으로 함께한 책. 왜 마지막이냐면 이후로 농놀이 너무 바빴다.
나는 아직도 ‘이론’이라고 하면 아주 견고하게 정립된 틀을 기대하게 된다. 아마도 내가 배웠던 학문이 대체로 그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틀의 가장 기본이 되는, 증명이 필요 없는 axiom 이 있고 거기서 lemma, theorem 을 하나하나 쌓아 올려서 theory 가 된다는 가정을 자꾸 깔고 들어간다. 이 부분은 『게임: 행위성의 예술』을 읽을 때도 모임원들에게 얘기한 적 있었고, 덕분에 내가 생각하는 ‘이론’과 철학을 전공한 친구들이 생각하는 ‘이론’ 사이에 얼마나 큰 간극이 있는지 한 번 더 배울 수 있었다. 『퀴어 이론 산책하기』를 읽으면서도 비슷한 감상을 받았었다. 좋은 책이고 생각할 거리도 많지만, 어쨌건 이건 이 사람의 ‘생각’이지 ‘이론’이 아니지 않냐는 질문을 여러 번 했었다. 그리고 질문을 하면서도 이게 무슨 질문인지 내 안에서도 정립이 잘 안 됐다.
현재 진행형인 사회 현상을 다루면서 내가 생각하는 방식의 견고한 ‘이론’을 세우는 게 불가능하다는 건 관념적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그 사실이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여전히. 퀴어 이론은 그런 점에선 게임 문화보다 훨씬 어렵다. 현존하는 퀴어 이론을 참조해서 나를 퀴어로 정체화하고 나면 그때부턴 당사자로서 담론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 이론에 변화가 생기면 나의 정체성에도 같이 변화가 생기나? 이론이 나를 포함하지 않을 때, 가령 이론에는 시스젠더와 바이젠더, 트랜스젠더의 개념밖에 없어서 내가 에이젠더 개념을 새로 창안했다고 했을 때, 그 개념이 퀴어 커뮤니티 다수에 의해 받아들여지면 나는 퀴어가 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비-퀴어가 되는 건가? 종 분류를 추가하듯 이론을 확장해 나가는 게 퀴어 이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인가? 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게 인상적이었다.
뚜렷한 문제 제기를 하거나 하나의 결론으로 나아가는 책이 아니라 정말 ‘산책’하는 책이었어서 요약 정리를 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아마 몇 번이고 다시 펼쳐보게 될 책.
음악, 당신에게 무엇입니까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산책. 음악을 업으로 또는 그 일부로 삼고 살아가는 분들께 음악의 의미를 물은 인터뷰 모음집이다. 처음에는 조성진 피아니스트, 손열음 피아니스트, 조수미 성악가 등 직접 무대에서 공연을 하는 분들을 다루다 후반부에선 박찬욱 감독이나 발레리나 강수진 등 음악 산업의 주변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좋게 말하면 재밌고 인사이트도 있고 술술 잘 읽히는데, 단점을 말하자면 몇 칸 되지 않는 우리 집 서재의 일부를 할애해서 갖고 싶을 만큼 나라는 개인을 정확하게 관통하진 않는다. 읽고 싶을 때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책. 그래서 다 읽은 후엔 중고 서점에 파는 것도 고려를 했었는데, 조성진 피아니스트와 백건우 피아니스트가 자신의 음악에 대해 말하는 책이 또… 팔면 아쉬울 거 같아 남겨뒀다. 두께가 제법 있는데, 아무 일정 없는 주말 하루만 할애하면 다 읽을 수 있을 만큼 잘 읽힌다. 책에 대한 전반적인 감상은 당시에 쓴 트윗으로 갈음.
“삶 전부를 걸고 자기가 도달할 수 있는 끝을 추구해 본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재미 있고 (그게 꼭 커리어 관련이든 아니든) 이런 자리는 인터뷰어가 얼마나 좋은 질문을 던지는 가도 중요하지만 인터뷰이가 얼마나 이런 자리에 익숙한 지, 자아를 닦아 내놓는 데 능숙한 지도 중요하구나 싶다.”
스토리 설계자, 작가를 위한 세계관 구축법,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세 권에 대한 감상문을 한꺼번에 쓰겠습니다. 전부 같은 목적으로 읽은 책이기 때문에.
작년에 농놀 2차 창작으로 판타지 AU 장편을 썼다. 처음 시작할 땐 장편이 되리라고 조금도 생각지 않았고, 그냥 쓰다 보니 재밌어서 계속 뒷내용을 이었는데, 10화를 넘어가자 나도 욕심이 생겼다. 내가 만든 세계관을 내가 애정한다는 게 참 무서운 일이다. 기왕 여기까지 온 거, 이만하면 최선은 다했다고 (적어도 나 자신은) 납득할 수 있게 쓰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독자에게 어떻게 가닿을 지는 10화 넘어갈 쯤부터 가늠을 포기했다.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샤프 내려 놓고 3개월 이상 묵혀 뒀다 다시 읽는 게 아니면, 결코 독자의 입장이 될 수 없더라. 하지만 이 세계관에 마무리가 지어지지 않으면 쓰는 내가 고통스러울 거 같아서… 울며 엎어지는 한이 있어도 완결은 내자 마음먹었다. 그래서 작법서를 사기 시작했다.
트위터. 시작은 언제나 트위터다. 대한민국에서 뭔가를 - 비이성적인 열기로 - 창작하고 소비하고 덕질하는 사람들은 모두 트위터에 모여 있다. 당연히 작법서 추천도 거기서 받았고, 그렇게 처음 산 게 『스토리 설계자』였다. 좋은 책이었다. 장면 설계하는 법도 잘 알려주고 따라하기도 쉬웠다. 근데 이 책의, 사실 대다수 작법서의 치명적인 단점이 뭐냐면, 2차 창작에는 적합하지가 않다. 1차 창작과 2차 창작은 궤가 많이 다르다. 1차 창작은 캐릭터 창작부터 내가 한다. 내가 이 글을 통해 전달하고픈 메세지나 분위기가 분명하게 있고 캐릭터는 글의 목적에 봉사하는 도구에 가깝다. 그런데 2차 창작은 캐릭터 창작을 내가 하지 않는다. 이미 있는 친구를 데려다 쓰며, 애초에 그 친구를 글에 등장시키는 게 이 글을 쓰는 목적에서 못해도 3할을 차지한다. 따라서 캐릭터를 주무르는 데 분명한 한계가 있다. 나는 이걸 『스토리 설계자』의 가이드에 따라 무지 노트를 대여섯 장을 쓰고서야 깨달았다. 이거 뭔가 이상하다. 뭔가 잘못됐다.
그래서 그 다음에 산 책이 『작가를 위한 세계관 구축법: 구동 편』. 이 책은 생성 편이 먼저 나왔고 후속작처럼 구동 편이 나왔는데, 당시 내게 필요하던 건 전투 장면을 쓰는 팁이어서 구동 편을 먼저 샀고, 나중엔 그냥 세트 맞추자 싶어 생성 편까지 샀다. 만약 장편 시작하기 전에 생성 편을 읽었다면 도움이 됐을까 여러 번 생각했는데, 그랬으면 아마 장편을 쓰지 않았을 거 같다. 앞으로 굴러야 할 고생길이 훤히 보이는데 그런 도전을 했을까? 첫 시작에 제일 필요한 건 역시 멋 모르고 덤비는 깡이다. 아무튼 이 책은 도움이 됐다. 실질적인 도움과 심적인 위안의 비율이 그래도 4:6은 됐다. 그만하면 훌륭하지.
마지막으로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국제도서전에서 샀는데 사실 이 책은 반신반의 했다. 일단 교수님이 쓴 입문 서적이 실제 입문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잘 없다. 챕터 1을 다 읽었을 때만 해도 정말 이 책을 어떡하면 좋을까 싶었다. 이 책이 다루는 건 순문학 중에서도 무려 러시아 단편 문학이라 2차 창작과는 아주아주 거리가 멀고, 나만 고생하는 거 아니라는 위안을 챙기자니 체호프 단편을 읽으면서 위안씩이나 받아갈 처지가 못 됐다. 근데 생각보다 뒷심이 괜찮았다. 당장의 팁을 주는 실용적인 책은 아니지만 글쓰기의 근본적인 면을 얘기하는 구절이 많았고, 무엇보다 책에 유머가 가득했다.
참고로 그 장편은 20+만자 로 완결이 났다. 작년 최대의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녹슨달
5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을 이틀 만에 다 읽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정말 쉬지 않고 한방에 읽어나갈 수 있는, 말 그대로 ‘재밌는’ 소설이었다. 예술가, 병약미, 탐미주의 이런 키워드 중고등학생 때나 좋아했지 이제는 떠나 보낸 줄 알았는데 그 시절에 쌓은 취향은 평생을 간다는 걸 깜빡하고 있었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거리를 주진 않는다. 하지만 원래 아는 맛이 제일 맛있다고… 잠시 현실을 잊고 예술가의 환상에 빠지고 싶은 날 읽으면 좋은 소설.
늑대 사냥
한직으로 좌천된 AI 전문가 67세 할머니와 군 부대, 안드로이드, 그리고 늑대가 나오는 SF 소설. 초여명 출판사 편집장으로 계시는 김성일 작가님의 새 장편소설이 나왔다기에 도서전에서 샀다. 팬이라면 팬일까. 오래 전에 쓰셨던 『메르시아의 별』도 읽었고, 『책에 갇히다』 앤솔로지에 실렸던 『붉은구두를 기다리다』도 읽었고, 다른 앤솔로지에 실렸던 『단동이』도 읽었고, 기회가 닿으면 김성일 작가님의 글은 챙겨 읽는 편이다. TRPG 커뮤니티에 이토록 오래 속해 계시는 분의 행보가 궁금해서 읽는 것도 있고 이 분이 만들어내시는 이야기가 내 취향인 것도 있고. 여태 저의 최애작은 『붉은구두를 기다리다』였습니다. 심지어 이번 신간인 『늑대 사냥』은 작가님이 직접 하신 추첨 이벤트에 당첨되는 바람에 내가 도서전에서 산 사인본 1부와 작가님께 직접 받은 1부가 있다. 나눔한다는 걸 깜빡해서 여태 두 권의 『늑대 사냥』과 함께 살고 있다.
하필 내가 2차 창작을 한창 하고 있을 때 읽은 지라 순수한 독자의 눈으로 읽지 못하고 오, 첫 문단은 이렇게 시작하는 거군요? 하고 참고서처럼 읽었다. 근데 그렇게 읽었을 때 꽤 도움이 됐다. 처음 두 문단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텍스트 양은 얼마 되지 않아도 그 안에서 세계관 설정을 얼마나 촘촘하게 할 수 있는지 한 수 배워가는 느낌. 결말과 짤막한 후기를 보고 나면 책에 나왔던 대화를 다시 읽어보게 된다. 의사소통이란 얼마나 일방적인가. 그러게요.
그리고 『붉은구두를 기다리다』에서도 느꼈던 거지만 소수자를 포용하는 서술이 정말 자연스럽다. 난 아직도 그 단편에 나왔던 왼아버지/오른아버지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종의 기원담 / 다섯 번째 감각
『종의 기원담』을 읽고 정신이 번쩍 들어 『다섯 번째 감각』을 사고, 이 책까지 다 읽은 뒤에는 김보영 작가님의 거의 모든 책을 다 주문해서 집에 들였다. 정말 놀라운 건 내가 이전에 『다섯 번째 감각』을 읽은 적이 있고 그때는 아무 감흥이 없는 걸 넘어 감상을 그다지 안 좋게 썼다는 건데 (블로그에 기록이 남아 있음) 추측컨대 그때는 SF를 읽는 태도가 마치 마술 공연을 보면서 속임수를 찾는 데만 골몰한 관객과 비슷했던 게 아닐까 싶다. 짧은 식견은 언제나 반성의 대상이다. 제가 이런 책을 앞에 두고도 진가를 몰라봤어요.
처음엔 제목이 제법 거창하다고 생각했다. 종의 기원담이라니, 글자 하나만 빼면 찰스 다윈이다. 그런데 읽다 보니 정말로 ‘종의 기원담’이었다. 보통은 인간의 입장으로 로봇 이야기를 서술하는 게 익숙한데 이 책은 거꾸로 로봇 입장에서 인간의 이야기를 창세 신화처럼 서술한다. 중간중간에 액자식 구성으로 끼어 있는 문헌 텍스트들이 거기에 실체감을 불어넣는다. 로봇이 주류가 된 세상. 유기생물이 멸종하고 무기생물이 디폴트로 여겨지는 세상에 성경이 쓰인다면 이렇지 않을까 싶은 글들이 등장한다. SF 판타지인데 동시에 종교적인 책이라니. 다 읽자마자 우리 집 서재 명예의 전당에 올려두었다.
『다섯 번째 감각』은, 이제 와서 호평을 쓰는 게 조금 웃기지만, 모든 단편이 좋았다. 사람 취향이 참 얄궂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