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2분기 책 결산 (2)
워크는 좌파가 아니다
도저히 모른 척하기 힘든 강렬한 제목, 그리고 트위터에서 팔로우하고 있는 모 철학과 교수님의 ‘책 재밌고 대체적으로 동의하나 푸코를 비판한 내용 일부는 동의하지 못했다’는 감상이 더욱 호기심을 자극했다. 교수님 전공이 푸코일 텐데 어떤 면에서 동의하지 못했는지 좀 더 풀어주시면 좋겠건만.
책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좌파의 근본은 정체성주의가 아닌 보편주의에 있다. 둘째, 이 차이에 대해 싸우고 논쟁하는 것은 좌파가 우파를 이기는 일만큼이나 중요하다. 두 번째 주장은 생각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데 왜냐하면 이 책이 두 번째 주장으로 인해 몇몇 출판사에서 출간을 거부당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우파가 득세하고 있는 요즘 ‘같은 좌파 안에서 싸워서 좋을 게 뭐냐, 그것도 좌파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인 정체성을 갖고’ ‘일단 우파를 막아낸 다음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 등등의 우려가 나오고 독자들에게 항의도 받았다고. 하지만 저자는 자신을 소위 woke 라고 칭하는 사람들에게 품은 극심한 반감을 숨기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woke 란 모든 개인을 정체성으로 분해해 환원시켜 버리는 사람들, 세상 일엔 다양한 측면이 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 만족해 버리는 사람들, 가령 이런 사람들이다.
“독일의 한 출판사가 신간 서적을 홍보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문구를 사용했다. “이 책은 여러분의 눈을 뜨게 해줄 것입니다.” 이 출판사는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말을 썼다는 이유로 즉시 공격을 받았고, 결국 광고를 내려야만 했다.
젊은 흑인 시인 아만다 고먼은 조 바이든의 대통령 취임식에서 자신의 시 『우리가 오르는 언덕』을 낭독하여 국제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열일곱 개의 출판사가 그의 저작을 번역하여 출간하기 위해 재빠르게 저작권 계약을 맺었다. 고먼은 네덜란드어본의 번역자로 네덜란드의 논바이너리 백인 작가를 추천했다. 고먼은 그의 부커상 수상 경력을 추앙하였기 때문이다. 번역자를 구하는 데 다른 이유가 있을 필요가 없다. 당신의 작품이 마음에 드는데, 제 작품도 번역해 볼래요? 그런데 네덜란드의 한 흑인 패션 블로거가 고먼의 작품은 흑인 여성만이 번역해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그 백인 작가는 바로 일을 그만두었지만, 이 이야기는 유럽 전체에 울려 퍼졌다.
카탈루냐어본은 이미 번역 작업이 끝나고 번역료까지 지급된 상태였지만, 그가 백인 남성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번역자를 찾아 계약하는 일이 벌어졌다. 스웨덴어본은 번역자로 한 흑인 래퍼를 찾았지만 덴마크에서는 흑인 번역자가 부족했기 때문에 결국 히잡을 쓰는 갈인 여성이 번역자로 계약을 맺었다. 독일어본 출판사는 아주 독일적인 해법을 찾아내서, 흑인 여성 한 사람, 갈인 여성 한 사람, 백인 여성 한 사람으로 번역 위원회를 구성하여 그 전체와 계약을 맺었다.”
어이가 없는 동시에 실제로 벌어지는 일인 걸 너무 잘 알아서 웃기 힘든 대목들인데. 우리나라도 요즘 여성 작가의 여성 서사에 너무너무 초점을 두고 있지 않나. 독자들도 해당 키워드를 좋아하고 출판사도 해당 키워드로 마케팅을 하고. 물론 이전에 biased된 부분이 많았으니 의미가 있다는 건 알지만, 마치 ‘여성 서사’ 키워드 하나만으로 책 전체를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구는 건 어딘가 이상하다.
저자는 BLM, 페미니즘 운동 역시 인종 간/성별 간 갈등이라는 틀 안에서 언젠간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A 정체성과 B 정체성 모두 본연의 모습을 존중받아야 한다는 주장만으로는 멀리 갈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좌파가 다시 돌아와야 하는 지점은 보편주의, 이 사람이 어떤 정체성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이 사람이 그저 인류이기 때문에, 설령 우리가 전혀 모르는 외형과 문화와 태도를 지니고 있다 해도 인류인 이상 그 사람을 수용할 수 있다는 태도를 견지해야지 사람을 하나하나 살 발라내듯 정체성 분해 놀이를 하는 짓은 그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낮의 어둠
반-극단주의 활동가인 저자가 극단주의 단체들에 잠입해 대체 이 단체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헤치는 르포르타주 논픽션. 꽤 오래 전부터 알라딘 장바구니에 들어 있었고 한번은 읽어봐야지 했었다.
이 책에서 독자를 가장 두렵게 하는 지점은 이 극단주의 단체들이 너무너무 체계적이고 심지어 제법 그럴듯해 보인다는 것이다. 네오나치나 반 페미니스트 단체를 상상할 때 우리 머릿속엔 ‘왠지 그런 데 가담할 거 같았던’ 사람들의 이미지가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대개 우리가 아직 벗어나지 못한 혐오의 이미지가 섞여 나온다.) 방에서 한 발짝도 안 나오고 사회성 없고 매일매일 헛소리나 하는 찐따의 모습을 상상하기 쉽고, 그런 이미지로 그려야 우리가 비웃기도 쉽지만, 현실의 네오나치와 반 페미니스트 단체는 생각보다 근사한 모양새를 취할 줄 안다. 저자가 취재한 게 유럽 중심이라 아시아와 분위기가 많이 다른 탓도 있겠지만 일단 저자는 자신이 처음으로 가입한 네오나치 단체의 구성원을 스타벅스에서 만난다. 놀랍게도 그들은 커피를 마시며 그럴 듯한 스몰 톡도 할 줄 안다. 농담도 던질 줄 알고 자신을 감출 줄도 알고, 기술력도 있고 단체를 운영할 줄도 안다.
오히려 좌파 단체는 이런 효율적인 조직 체계를 갖고 굴러가지 못하던데 (그럴 수밖에 없긴 하다. 그 체계를 부수고 싶어 모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저쪽은 회원 관리 체계부터 행동 강령까지 굉장히 전략적으로 움직이고 있어서.. 무섭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책. 안심과 희망을 주는 내용이 아니므로 읽을 때 약간 주의 필요.
연구자의 탄생
여러 명의 연구자가 모여 자신의 연구 분야, ‘연구자’라는 직업군을 선택하게 된 삶의 배경, 아무튼 연구라는 주제로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모아둔 에세이집. 재밌었다. 여러 명이 공동으로 쓴 에세이집은 딱히 한 주제로 모이는 게 아니다보니 할 말이 길게 나오진 않는데 재밌었고 잘 읽었다. 여전히 집 책장에 꽂혀 있음.
지금은 대체 어떤 세계인가
다들 그런지 모르겠는데 나는 ‘나 특정 주제에 대해 말 많이 해, 하지만 공부를 제대로 해 본 적은 없어’ 두려움을 한 번씩 앓는다. 그래서 언젠간 제대로 된 지식을 쌓아야 한다는 부채감에 시달리며 이런저런 책들을 알라딘 보관함에 쌓아두는데 그 중 한 카테고리가 주디스 버틀러였다. 주디스 버틀러. 요즘 세상에 페미니즘에 대해 말 한 마디라도 하려면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관문인데, 『젠더 트러블』을 이북으로 사 둔 게 몇 년 전인데 아직 단 한 페이지도 읽지 않았다.
최근에 그 두려움-증상을 한 번 또 크게 앓았고, 보관함에 쌓아둔 주디스 버틀러 책 중 그나마 쉬워보이고 나온지 얼마 안 된 책을 골라 샀는데, 재미는 없었다. 주디스 버틀러가 코로나 시국에 대해 썼던 강의록을 모은 책인데 재미가 없었다. 책 표지는 정말 예뻤는데.. 60% 쯤 읽고 한숨 쉬면서 중고서점에 내다팔아서 지금은 책도 안 갖고 있음.
구미: 땅콩밭의 파수꾼
『지역의 사생활』이라는 만화 시리즈가 있다. 지역 하나를 골라 그곳을 테마로 만화가가 그리고 싶은 만화를 그리는 시리즈인데, 온갖 지역 편을 봤지만 구미편이 나온 줄은 모르고 있다가 동향 친구가 구미편 이거 진짜 재밌다고 당신 꼭 읽어야 한다고 추천해 줘서 읽었다.
만화는 한번 읽고 나면 빠르게 빠르게 처분하는 편인데 (사유: 공간 부족) 이 책은 꽤 오래 갖고 있을 거 같다. 꼭 내 고향 이야기여서는 아니고, 물론 내가 아는 지명이 책에 자연스럽게 등장했을 때의 반가움은 크지만, 사회성 약간 떨어지고 머리를 하나로 묶고 다니고 수도권과 어른의 세계를 동경하는 동시에 그걸 매끄럽게 표현할 줄은 모르는 지방 오타쿠 여학생 주인공이 내게 너무 큰 의미를 주기 때문. 그리고 저자 닉네임이 익숙해서 어디서 뵈었나 했는데 여명기(여성주연 비로맨스 만화 앤솔)에도 참여했던 분이었다. 그게 또 크게 반가웠다는 이야기.
월간 십육일
이제는 세월호에 대한 책을 읽어볼 때가 됐다 생각해서 샀고 읽었는데 여전히 마음속 안개는 걷히지 않았다.
INK ON BODY: 한국 여성 타투 이야기
올해 도서전에서 샀고 구매한 그날 다 읽었다. 개인적으로 타투를 언젠가는 해 보고 싶고 - 나한테 의미 있는 것을 내 몸에 새길 수 있는 게 긍지 있는 일로 느껴지고 - 타투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아해서 호기심으로 책을 샀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더 울림이 컸다. 이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 사람들이 자기 타투에 대해 말하는 태도가 너무 좋았고 무엇보다 책 거의 마지막에 실려 있는 소우림 씨 에세이에서 나도 같이 울었다. 종현을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쉽게 넘기지 못할 글이었다.
아무튼, 데모
역시 올해 도서전에서 샀고 구매한 그날 다 읽었다. 정보라 작가님은 SF 와 『저주토끼』 키워드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 데모를, 소위 운동꿘에 계셨던 분인줄은 이날 처음 알았다. 살벌한 내용을 굉장히 일상적인 톤으로 쓰셔서 읽는 사람도 너무 무겁지 않게 읽을 수 있었고 어쩌면 여태 나온 모든 『아무튼』 시리즈 중에 가장 필요한 책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하지만 여름에 오체투지를 하면 배가 바닥에 닿았을 때 따끈따끈해서 기분이 좋다는 멘트를 책에서 봤을 땐 무슨 표정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웃어도 되는.. 거였을까요?
아무튼, 디지몬
생각지 못하게 감동적이었다. 포켓몬 vs 디지몬에서 나는 유구하게 디지몬 파인데, 캐릭터의 조형은 포켓몬 쪽이 더 아기자기하고 귀여웠을지언정 디지몬 월드가 주는 그 ‘소외된 어린이들의 놀이터’ 같은 분위기가 그 시절 진짜로 소외되어 있던 어린이들을 모두 끌어모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저자 분이 바로 그 소외된 어린이 중 한 명이었고 디지몬 세계를 정말 아끼셨다는 게 느껴져서.. 한국어 로컬라이징된 이름으로 아이들을 부르며 추억을 되새길 땐 괜히 같이 찡했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돌보며 자기에게도 말 안 듣는 디지몬이 하나 생겼다고 사고 흐름을 이어가시는 파트에선 마음이 정말 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