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상담에선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은 일과 사랑이 결국 본질적으로 같은 거라고, 같은 감정을 자극하는 거라고 말씀하셨다.

잘 이해가 안 됐다. 회사에서 일을 잘했다고 인정 받는 감각과 연인에게 사랑 받는 게 어떻게 같지? 난 연애를 할 때 상대가 나를 ‘여성’으로서 아끼고 예뻐하는 뉘앙스가 느껴지면 굉장히 불편했다. 그 상대가 보고 있는 게 나 같지 않았다. 또 모종의 허상을 보고 있는 상대 앞에 서면 나 역시 ‘보통 이런 여자들이 사랑 받지’ 류의 캐릭터를 연기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느꼈다. 상대가 바라는 게 성적인 걸로 넘어오면 그렇게 거지같을 수 없었다. 성관계가 포함된 연애를 많이 해 본 건 아니지만 오전에 주고받는 카톡에서부터 알 수 있다. 밤을 벼르고 있다는 걸. 낮의 데이트는 결말을 원하는 대로 끌고 가기 위한 빌드업이라는 걸. 그런 감각은 타고나는 걸까. 사랑해서 그런 거라는 말은 몸서리치는 혐오감에 진절머리를 얹으면 얹었지 별 도움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말은, 상대가 나를 제대로 보고 있지 않다는 결정적인 증거와 같았다.

하지만 그 상대방이 나를 존경할 땐 이야기가 달랐다. 내가 논리와 집합 기말고사에서 만점을 받았을 때 전 남자친구의 표정은 볼 만했다. 넌 과고를 나온 애가 왜 그렇게 과학을 모르냐고, 난 여자친구랑 과학에 대한 깊은 이야기도 나누고 싶었다고 말하던 사람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말에 엄청나게 상처를 받았다. 안 그래도 고등학교에 두고 나온 것들에 트라우마가 있는데. 내가 왜 너한테 그런 소릴 들어야 하냐고 화를 냈으면 좋았겠지만 그 때의 나는 반성을 했다. 그리고 졸업하던 해에, 남자친구는 드랍을 하고 난 끝까지 들었던 과목에서 내가 만점을 받았을 때, 그때야 비로소 나도 당당해질 수 있었다. 고등학생 때도 비슷했다. 나를 여자로서 예뻐할 때보다 내가 자기 생각보다 더 높은 성적을 받아서 놀랐을 때가 더 기뻤다. 그래도 나름 선배라고 족보에 이것저것 챙겨주며 스스로 으쓱해 하던 타입이라, 내가 또 마냥 네 도움만 받는 사람은 아니지! 하며 나도 으쓱할 수 있었고.

그래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저한테 그 둘은 좀 다른 것 같은데요. 저는 상대가 저를 여성으로 보는 게 너무 불편했어요. 오히려 저를 존경해 줄 때가 훨씬 기뻤고… 그렇게 말끝을 흐리며 애매하게 웃자 선생님은 너무나 자명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이 부드럽게 말했다. 언젠간 이 이야기도 다뤄야 한다고 생각은 했는데, 아직은 시기상조라 말을 아끼고 있었던 거에요. 그렇지만 이왕 주제가 나온 김에 얘기하자면… 그게 ㅇㅇ님한테 가장 익숙한 방식이라서 그래요. 성과를 달성하면 그 보상으로 사랑 받는 것. 그러니 그런 성과 없이 주는 사랑이 너무 어색하죠. 뭔가 이뤄낸 게 없으면 ㅇㅇ님이 자기 자신을 사랑받을 만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ㅇㅇ님, 이건 이번 상담에서 꼭 알아가셔야 해요. ㅇㅇ님은 너무나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분이에요.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사랑받을 수 있어요. 물론 더 사랑받기 위해 노력할 수도 있죠. 회사에서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사랑받기 위한 노력이구요. 남자들 앞에만 서면 목소리 톤이 달라지는 지지배들? 그것도 결국 이성에게 사랑받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잖아요. 그만큼 노력하고 있는 거야. 대단한 친구들이지. 그런 노력을 하면 더 사랑받을 수 있겠죠. 하지만 설사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ㅇㅇ님은 여전히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거. 그러니까… 우선은, 일이든 사랑이든 그런 욕망을 추구하는 나를 알아가는 것부터 시작하자구요. 알았죠?

너무나 정석적인 말에 당황스러웠다. 초등학교 학예회에서 신물 나게 우려먹었던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의 수화 공연이 머릿속에서 재연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도 이딴 공연을 왜 하는 것인가 투덜댔는데 (역시 바른 학생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제 와서 종교적인 아가페가 느껴지는 말을 진심으로 들어야 한다니. 하지만 선생님은 추측과 확신을 분명하게 구분하는 분이셨다. 확신을 말할 땐 단어 하나하나에 힘을 실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고개 끄덕끄덕을 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으셨다. 이번은 후자였고, 선생님은 진심이셨다.

진지한 설득을 들었으면 나 역시 진지한 답을 해야 하는데. 나한텐 영 쉬운 문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