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화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존재가 보였습니다. 처음엔 아빠에게 달려가 어젯밤 읽었던 동화 속 괴물이 있다고 울며 떼를 썼지만, 그 말을 듣고 아빠의 표정이 굳는 걸 보는 게 더 무서워 어느 순간부턴 말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정신 나간 아이 취급하는 주변 사람들, 자신을 재미난 장난감 정도로 취급하고 놀려대는 이계의 존재들 사이에서 연화는 아무도 믿지 않는 사람으로 자랐습니다.

왜 나한테만 저것들이 보이는 걸까. 그 물음의 답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남긴 일기에 따르면 이것은 집안 내력으로, 연화네 가문의 여자들은 자신이 원치 않아도 이계의 것이 보이거나 미래의 일을 알게 될 때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로 인한 스트레스인지 몸에 알 수 없는 영향이 있었는지 대부분 단명하며 이는 연화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버지가 연화의 힘을 두려워 하는 것도 이것 때문이었구요. 그렇지만 연화는 좀 더 초연히 대처하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오래 살기 힘든 체질이라면,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자. 이 힘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보자.

연화는 현재 강화도의 인적 드문 마을에서 ‘연화의 숲’이라는 타로샵을 5년째 운영하고 있습니다. 누가 이런 곳까지 타로를 보러 올까 싶지만 의외로 알음알음 찾아오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문제는 인터넷에도 등록이 안 되어있고 지도에서도 검색이 되지 않아, 기껏 강화도까지 갔는데 샵을 찾지 못하고 허탕 친 사람이 부지기수 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연화는 늘 ‘필요한 사람만이 찾아올 수 있는 곳이니까’ 그렇다는 말을 반복할 뿐입니다.

어차피 타로샵은 인간 사회에 뿌리를 내리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막, 구색을 갖춘 것에 불과하고 실제 연화의 생업은 현실과 이계를 오가는 장삿일입니다. 실종자 찾기, 민족학 연구 등 소소한 것부터 높은 분 뒷조사 등 위험천만한 것까지 다양한 의뢰가 연화의 숲으로 접수됩니다. 연화는 장사치답게 중립을 유지하며 어느 한 쪽을 편드는 일은 가급적 거절하지만 간혹 괴물 놈들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거냐는 비난을 들을 때도 있습니다. ‘너희 눈에는 안 보이니까 쉽게 얘기하는 거야.’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고 넘기지만요.

연화의 숲이 지금만큼 이름이 알려지는데는 한경의 공이 컸습니다. 그는 정체를 숨기고 인간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뱀파이어로, 폐기된 혈액을 야금야금 훔치다 덜미가 잡힌걸 연화가 도와준 일을 계기로 그녀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한경은 인간 사회에 조용히 녹아들고자 하는 다른 뱀파이어들과 연화 사이에서 오랫동안 가교 역할을 하며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연화 역시 이젠 가게를 운영한지 5년째라 다른 단골 손님도 많음에도 불구하고 한경이 부탁하는 일은 어지간해선 거절하지 않습니다.

타로샵에서 쌓은 노하우 덕에 겉으로는 얼마든지 친근하게 굴 수 있지만 기본적으론 정을 잘 주지 않습니다. 남을 함부로 믿었다간 등에 칼 꽂히기 쉬운 생업을 하고 있는데다 체질도 체질이라,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책임지지 못할 관계를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연화’는 일을 할 때 사용하는 예명입니다. 이계의 존재들을 대할 때 본명을 쓰는 건 대놓고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연화의 본명을 아는 이는 극소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