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푹 빠져 있는 리얼리티 쇼 - 퀴어아이
요즘 이 프로그램에 진짜 제대로 빠져 있다. 친구들이 블랙미러 재밌다 스카이캐슬 재밌다 해도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나는 나 자신을 꾸미는 데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고, 더 솔직히 얘기하자면 좀 꾸미고 다니라는 말을 정말 듣기 싫어하는 사람이다. 남한테 피해 끼친 것도 없는데 그런 얘기를 왜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기도 하고 “너는 여자애인데” “좀 더 20대 여자답게 화장도 하고 핸드백도 메고” 같은 말들이 대단히 성차별적으로 들려서 이기도 하다. 그래서 여태 나는 내가 꾸미는 데엔 그다지 관심 없는 사람임을 열심히 어필해 왔고, 누가 그런 부분에 대해 충고를 하려 들면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니 싫으면 네가 떠나라’ 같은 자세를 고수해 왔었다.
요즘은 그런 충고를 조금은 유하게 들으려고 노력 중이다. 그런 거 하나하나에 날카롭게 반응하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생겼고, 또 직장인이 되면서 나 자신이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진심으로 하게 됐기 때문이다. 아직도 “화장도 하고 핸드백도 메고” 에는 거리감을 느끼지만 꾸민다는 게 꼭 페미닌하게 꾸미는 걸 말하는 건 아니니까. 나답고 편하지만 좀 더 어른스러운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즈음에 넷플릭스에서 이 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퀴어아이는 게이 남자 다섯 명이 삶에 변화가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가 꾸며주는 리얼리티 쇼다. 이 쇼가 만약 우리나라 공중파에서 방영하는 프로그램이었다면 분명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주로 찾아갔겠지만 (박수홍의 러브 하우스나 렛미인처럼) 퀴어아이는 그렇지 않다. 몇 년 간 동거한 애인에게 멋진 프로포즈를 하고 싶다와 같은 소소한 사연부터, 성전환 수술을 마쳤고 이제 자신의 진짜 성별에 맞게 옷을 입고 싶다 같이 이 프로그램에서만 다룰 수 있을 것 같은 사연들도 많이 도착한다. 내가 제일 웃프게 들었던 건 대학교 졸업식까지 마쳤으나 한 과목이 F가 뜨는 바람에 내년에도 학교를 다녀야 한다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분의 사연이었다. 대학교 졸업한지 몇 년이나 지났지만 상상만으로도 아찔해..
이렇게 여러 가지 이유로 변화가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가 하나부터 열까지 바꿔준다. 각각의 담당 분야가 있어서 집 인테리어, 패션, 헤어스타일, 요리 솜씨 등등을 일주일동안 코치해주는 식인데, 겉모습이 바뀌면서 자신감을 되찾고 일주일 전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주인공들을 보고 있으면 나까지 마음이 뭉클해진다. 더구나 이 다섯 남자들의 꾸미는 솜씨가 아주 일품인데, 옛날 옛적 박수홍의 러브 하우스가 다 허물어져 가던 집을 모델하우스처럼 번쩍번쩍하게 바꾸는 식이었다면 이 프로그램은 사연 주인공의 개성을 굉장히 존중해 준다. 가령 사연 주인공이 수염이 별로 안 어울리는 사람이어도, 수염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면 굳이 건드리지 않는다던지. 그런데 그렇게 다 존중해 주고 맞춰준 결과물을 보면 놀랍기 그지 없다. 일주일 전엔 좀 희미하게 느껴졌던 (매력이 있는 거 같긴 한데 으음..) 그 사람의 매력이 눈에 확 들어오고, 저런 사람이라면 나도 한 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매 화가 그렇다.
이 프로그램을 보고 나 자신도 꽤 자극을 받아서, 안 입던 옷을 싹 모아다가 의류수거함에 던져놓고 새 옷 새 신발을 사오기도 하고 고등학교 때부터 쓰던 침대 시트를 버리고 새 걸 사오기도 하는 등 소소하게 바꿔나가고 있다. 외적인 걸 바꾼다는 게 꼭 무언가 드라마틱하게, 페미닌한 스타일로 바뀌어야 하는 게 아닌데 내가 지레 겁먹고 있었나 싶기도 하고. 아직은 남들 눈에 띄는 단계는 아니지만, 나 자신을 위해 조금씩 변화를 주고 있다는 성취감만으로도 기분이 꽤 좋은 것 같다.
암튼 퀴어아이 엄청 재밌다. 특히 요즘 사는 게 지지부진해서 밝고 긍정적인 변화가 필요할 때 보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