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통한다는 것
작년에 샀던 책을 지난 주말에야 다 읽었다. 청각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이었다. 굉장히 청소년 문학스러운 감성에, 결말은 판타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밝고 긍정적이었지만 그 나름의 매력이 있는 작품이었다. 구어를 쓰지 않는 사람들의 소통 방식이 새롭게 느껴졌고, 어쩌면 구어보다 더 정확하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단 생각도 들었다. 언어가 아무리 정교하고 섬세해도 내가 전하고 싶은 말과 감정을 언어로 다 표현하지 못할 때도 많으니까.
퀴어아이의 한 에피소드에 등장했던 남자 분은 몇 년 째 동거하고 있는 Shannan 이라는 애인이 있었는데, 멋지게 변신해서 최고의 프로포즈를 하는 게 목표였다. 그래서 Fab5 는 이 분의 프로포즈도 함께 계획해 줬고, 에피소드 마지막엔 그 분이 ‘나에게 Shannan 이란 말은 love 와 같은 의미’ 라며 I shannan you 라고 고백하는 장면이 나왔다. 이후로 퀴어아이 팬들 사이에서 shannan 은 love 를 뜻하는 하나의 낱말로 굳어져서, 트위터에서 퀴어아이 관련 기사를 보면 “Oh I shannan them!” 하는 리트윗을 많이 볼 수 있게 되었다.
아 이 훈훈한 사람들 ^^ 하면서 보다가, 문득 이런 말도 안되는 문장으로 서로 소통하는 게 참 신기하단 생각이 들었다. 문법 상으론 도저히 말이 안 되는 희한한 영어 문장을 만들어다가 서로 덕담처럼 자연스레 주고 받는게. 외국 사람들과도 쉽고 빠르게 소통할 수 있는 걸 SNS 의 장점으로 생각한다면 그 장점을 최대한 살린 곳은 트위터다. 내가 좋아하는 만화, 좋아하는 주제에 대해서 얘기하는 지구 반대편 사람을 정말 쉽게 찾아낼 수 있다. 한 트윗에 대해 누군가는 영어로, 누군가는 스페인어로, 누군가는 일본어로 답글을 달지만 그 안에선 위아더 월드가 따로 없다. 구글 번역기까지 갈 것도 없이, 첨부된 이모지만 봐도 우리가 지금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대체로 ‘우리 장르 너무 최고야..’ 같은 거겠지)
회사에서 얘기를 할 땐 똑같이 한국어를 쓰는데도 ‘말 안 통하네..’ 싶은 순간이 있는데, 생전 배워본 적도 없는 언어를 쓰는 사람과 대화를 하면서 진짜로 통했다는 느낌이 드는 건 참 모순적이다. 하지만 누구랑 대화를 해도 이 사람이 정말 내 말을 이해한 건지, 우리가 진짜로 통한 건지는 영원히 알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블랙박스고, 내가 그나마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건 내 감정 뿐이지. 예전엔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따라서 대화는 다 무의미하고 페소아는 옳다’는 결론에 다다랐었는데, 요즘은 조금만 더 따뜻해지면 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왜 똑같은 생각에서 다른 결론이 나오게 됐는지는 나조차도 잘 모르겠다. 조금 더 지친 거라고 해야 할지, 조금 더 유해진 거라고 해야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