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하는 유투버가 커뮤니티에서 그런 말을 했다. 소박한 바람이라는 말은 모순 같다고. 내가 가진 게 소박할 수는 있어도 바라는 게 소박할 수는 없다. 그건 ‘이게 소박한 바람이었으면’ 하는 마음인 거라고. 너무 과한 꿈이 아니었으면, 그래서 쉽게 이뤄졌으면.

나는 바라는 게 별로 없는 사람이다. 너는 머리는 좋은 거 같은데 뭘 하겠다는 열의가 참 없구나, 라고 직접 들은 적도 있다. 그것도 중학생 때. 나는 십여년 전부터 그런 성격이었다. 재밌을 거 같긴 한데 너무너무 하고 싶진 않아요. 안 되면 말죠 뭐. 내 이런 태도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어른들을 보면서 어쩐지 미안하다가도, 아니 근데 없는 열정을 어쩌란 말인가 싶기도 했다. 열정 넘치는 젊은이라는 클리셰는 다 어른들 편할대로 만들어 낸 이미지라고 진심으로 생각했던지라 주위 사람들이 화를 낼수록 난 더 차분해졌다.

반대급부로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바라고 추구하는 사람에 대한 열망은 강해졌다. 나한테 열정이 없다면 열정 넘치는 사람의 서포트 역을 맡아서 사회적인 기여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고, 심지어 연애를 할 때도 외골수 타입에게 끌리는 일이 많았다. 국어도 재밌고 수학도 재밌는데 외고와 과고 중 어디를 가는게 더 좋을지, 문과도 재밌고 이과도 재밌는데 어느 과를 가면 좋을지, 겨우 수학이라고 결정해서 왔는데 결국은 전과해버린 나 자신이 우스우면서도 불편했기에 더더욱, 한 길을 내리 십 년 넘게 파는 사람이 멋있어 보였다. 이제 와선 너무나 옛날 일이지만.

결국 이러나 저러나 나는 열정 넘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게 힘들 것 같으면 행동력이라도 갖고 싶었다. 장고 끝에 악수 두는 건 책임감이라도 있지, 나는 장고 끝에 자리를 떴던 적도 많다. 다이어리에 이런저런 글은 정말 많다. 이런 사람이 되고 싶고 저런 사람이 되고 싶고. 하지만 이게 정말 내 내면의 소리인지, 아니면 열정을 갖고 싶단 마음으로 만들어 낸 나인지 솔직히 분간이 안 간다. 다이어리에 적던 순간엔 진심이었을텐데, 어느 날 다시 펼쳐 읽어보면 역시 잘 모르겠다.

나는 바라는 게 별로 없는 사람인데, 그래서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게 생겼으면 하고 바라는데, 실은 이게 소박한 바람도 아니라고 하니. 결국 나는 바라는 게 매우 많은 사람인가 하는 결론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