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운동을 주 3회만 하기로 결심했다. 읽고 싶은 책이 많아서 책을 위한 시간을 따로 내기로 했다. 재작년에 JLPT 공부 열심히 했을 때도 비슷한 패턴으로 살았었는데, 이렇게 격일로 운동을 하면 매일매일 색다르게 즐겁다는 장점이 생긴다. 운동을 가는 날엔 운동하러 가기 때문에 기분이 좋고, 운동 끝나고 나면 내일은 운동을 안 해도 되기 때문에 기분이 좋다. 또 난 운동하러 가는 날엔 저녁을 안 먹는다는 원칙을 지키는데, 운동을 안 가는 날엔 저녁을 먹어도 되기 때문에(!) 뭘 먹을지 전날부터 두근거리며 고민해볼 수도 있다.

내일 저녁은 짜파게티가 맛있겠다.

2.

좋아하는 일본 뮤지션의 음악을 들으면서 일본 근대사 비판을 읽고 있자니 좀 위화감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일본을 좋아하고 싶은 걸까 싫어하고 싶은 걸까.

​신주쿠 코리아 타운은 장사가 정말 잘 된다고 한다. 인산인해로 발 디딜 틈이 없고 한국어 학원에도 사람이 바글바글 몰린다고. 언어 구조도 비슷하고, 케이팝에 관심 가지는 일본 사람들도 정말 많고. 여행 가서 재미나게 놀다 보면 한일 감정 같은 게 왜 있는 걸까 다들 친해지면 좋을 텐데, 하고 웃고 올 수 있다. 하지만 집에 와서 일본의 근대사와 문화에 대한 책을 읽다 보면 내가 느꼈던 따뜻함과 아득히 먼 현실이 있다.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사람들. 봐야 할 대상을 보지 않고 엉뚱한 곳으로 도망치는 기성 세대. 개선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여성 차별.

천만 단위의 인구가 사는 나라를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시키려는 시도 자체가 잘못됐겠지만, 가끔은 내가 느낀 모순에 내가 어지러워서 ‘그래서 대체 일본은 어떤 나라야?’ 하고 반문하고 만다. 어떤 나라긴, 아주 드라뫄틱한 나라지..

​3.

새삼스럽게 잡지의 매력을 느꼈다.

블로그, 브런치, 유투브 등등 매체는 많아졌지만 결국 어느 정도 이상의 퀄리티가 보장되는 컨텐츠는 전문 매체를 봐야 찾을 수 있다. 유투브에 도는 뉴스보다 언론사에서 내보낸 뉴스가 더 신뢰도가 높고, 헤드라인만 나온 기사보다 한 편의 논설문이 더 가치있는 것처럼. 애니메이션도 영화도, 인터넷에 리뷰 올리는 사람은 정말 많지만 결국 깊이 있는 분석을 접하려면 전문가를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우연찮게 접한 영화 잡지 ‘키노’ 때문이었다. 내가 태어날 때 쯤 창간되어 초등학생 때 폐간된 잡지인데, 인터넷에 아카이브로 남아 있어서 몇 페이지 읽어 봤다가 깜짝 놀랐다. 지금의 씨네21이 감독이나 배우들과의 인터뷰에 무게를 싣는다면 키노는 오로지 필진의 해석에 집중하고 있었다. 한 작품을 무엇과 엮어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그 해석이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지만, 비난 받을 걸 걱정해서 적절히 피해가는 듯한 어중간함이 없었다. 그 와중에 글 한 편 한 편의 퀄리티도 꽤 높았다. 필진의 이름을 하나하나 구글에 검색하면서 지금은 뭐하고 사시나 어떤 글을 또 쓰셨나 검색해 보게 될 정도로.

그래서 결과적으로, 다음 달부터 영화 잡지 FILO 를 정기구독으로 받아볼 듯하다. 집에 양질의 글이 배달되다니 생각만 해도 두근두근 하잖아.

4.

지난 주말 교보문고에 가서 책 구경을 좀 했다. 정기구독 신청하기 전에 FILO 7호도 읽어보고, 요즘 관심을 갖고 있는 미학 서적도 찾아보고. 교보문고를 올 때마다 베스트셀러의 트렌드가 ‘남 신경 쓸 필요 없다’와 ‘퇴사’에서 요만큼도 변하지 않는 걸 안타깝게 생각했었는데 미학 책이 진열된 코너에 머물러보니 거기서 책을 고르는 사람들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대학 수업용 교재를 사는 것 같았는데 나는 이름도 잘 모르는 철학자들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었고 또 FILO 를 보러 갔을 땐 칼럼을 유심히 읽어보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자주 가던 공원에서 아무도 모르는 샛길을 발견해서 그 길로 와봤더니 판타지 세상으로 이어진 듯한,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세상에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건 입 아플 정도로 당연한 말인데도 어떻게 이렇게 자주 잊어버릴 수 있을까. 내가 읽을 책을 대형서점 베스트셀러가 골라주길 기대했던 내 나태함이 부끄러워지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