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의 제국
김준양 선생님의 ‘이미지의 제국’을 지난 달부터 읽고 있다. 앞으로 한 달은 더 읽어야 완독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역사와 맥락을 분석한 책인데, 이런 주제를 너무너무 공부해보고 싶었던 나로선 한 줄기 빛을 찾은 기분이다. 이 분야를 진지하게 연구하는 사람을 찾은 것만 해도 기쁜데 분석도 대단히 깊이있어서 거의 성서를 읽는 듯한 경건함으로 한 장 한 장을 정독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정보의 홍수라고 부르는 인터넷이 사실은 얼마나 빈곤한 체계인가 하는 걸 새삼 느꼈다. 이 책에서 레퍼런스로 사용된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어서 검색하면 리뷰는 고사하고 모조리 절판에, 동네 도서관에 비치된 케이스가 20%, 나머지는 전부 국립중앙도서관까지 가야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서울에 올라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국립중앙도서관의 정확한 취지를 몰랐던 나는 그 곳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시설이 좋은 도서관이겠거니 하고 방문했다가 대단히 실망했던 기억이 있는데, 요즘에서야 그 곳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다. 이미 한참 전에 절판되어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책을 읽어볼 수 있는 마지막 장소. 지식의 보고는 이런 곳을 가리키는 단어가 아닐까.
‘포스트디지털 프린트: 1874년 이후 출판의 변화’ 라는 책을 보면 디지털 컨텐츠가 인쇄된 페이지를 대체할 수 있을 지에 대해 한 챕터를 할애해서 이야기하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은 문제다. 결국은 유형(有形)의 아카이브가 필요한 분야가 있고, 공유하고 빌려주고 재판매하기 용이하다는 장점은 무시하기 힘들다. 특히 사상과 검열을 내세우는 시대 사회에서 인쇄된 컨텐츠의 활약은 눈부실 정도라, 오랜 시간 살아남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위키피디아 페이지를 역으로 책으로 만드는 프로젝트가 있을 정도니까. 그리고 인터넷에선 사람들이 자주 찾는 정보만이 살아남는다. 가령 ‘포스트모더니즘과 일본’ 같은, 나 같은 사람만 검색하는 주제는 스크롤을 한참 내려도 괜찮은 글을 찾을 수가 없다.
다시 ‘이미지의 제국’으로 돌아와서. 생각보다 일본과 한국의 문화에 오리엔탈리즘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는 걸 알고 나서 오리엔탈리즘을 제대로 파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다음 책으로는 이 분야의 고전인 에드워드 사이드의 책을 읽어보기로 마음 먹었다. 그런데 이왕이면 셀프-오리엔탈리즘을 함께 공부할 수 있는 다른 레퍼런스도 찾고 싶어서 구글에 ‘셀프 오리엔탈리즘’ 이라고 한글로 검색했는데 그 결과가 충격적이었다. 가장 상위에 나오는 게 네이버 블로그였는데 이 단어를 무려 ‘동양적임을 벗어나자’는 탈 오리엔탈리즘이라고 완전히 잘못 설명하고 있었고, 제대로 된 설명은 스크롤을 한참 내려 어느 문화비평지 웹사이트에서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일반인 대상으로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네이버 지식인이 한 명 정돈 있을 줄 알았는데, 역시 인터넷 지식은 빈곤했다.
모두가 동영상 매체를 찾아 떠나는 마당에 종이를 붙들고 넘기는 내가 너무 고지식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20대의 나이에 ‘요즘 애들은 뭘 몰라, 옛 것이 좋은데’ 하며 혀를 끌끌 차는 노인이 되어 버린 건지도. 하지만 인터넷이 특정 분야 특정 시기의 지식에 매우 편중되어 있는 건 사실이고 난 평생 마이너 취향만 파온 사람인 걸.. 앞으로도 계속 인터넷은 뭐가 제대로 된 게 없다고 툴툴대는 삶을 살겠지. 여기서 변화를 줄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은 내가 이 빈약한 컨텐츠 시장에 참여하고 기여하는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