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기간동안 다섯 편의 영화와 한 편의 애니메이션을 봤다. 그 전 주에 다 봤는데 아직 감상평을 쓰지 못한 애니메이션이 하나 더 있다. 이번 주 안에 다 갈무리해서 쓸 수 있겠지.

여러 편의 영화를 봤는데도 여전히 최근 본 영화 중 가장 강렬하게 남은 건 아사코다. 배경음악만 들어도 주인공들의 감정과 서사가 다시 환기되어서 안절부절 못하게 된다. 처음 봤을 땐 이 영화의 많은 부분을 나름대로 파악했다고 자신했는데, 곱씹을수록 이 영화가 나의 어디를 헤집어 놓고 있는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해피아워 재개봉하면 꼭 보러 가야지. ​ 어린이와 어른의 차이는 뭘까에 대해서 생각하는 일이 많아졌다. 철없는 아이를 훈계하는 듯하다가 정작 본인이 제일 막장으로 굴어버리는 어른도 있고 (에이프릴의 딸) 만화는 애들이나 보는 거라고 낮잡아 보더니 슈퍼히어로물에 열광하는 어른도 있고 (마블) 과연 어른과 청소년과 어린아이 사이에 명확한 구분선이라는 게 있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나는 줄곧 한 자리에 머물러있는 내가 ‘성장하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너무 싫었는데, 실은 성장이라는 거 자체가 허구가 아닌가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건 역시 아사코의 영향일까.​

모성은 뭘까. 그것도 요즘은 잘 모르겠다. 유투브를 돌아다니다가 뜬금없이 세나개(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에 꽂혀서, 강형욱 훈련사님 채널에 아내 분 채널도 구독해서 강아지 영상을 멍하니 보고 있다. 웰시코기 백호랑 달려라 달리 채널도 구독했다. 덕분에 강아지의 귀여움에 입덕하고 (ㅜㅜ) 한편으로 강아지를 키우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여실히 알게 됐다. 돈도 많이 깨지고 내 생활의 많은 부분을 그 친구에게 맞춰야 하고, 다 머리론 대강 알고 있던 것들이었지만 직접 화면으로 접하고 말로 접하니 또 달랐다. 난 저만한 집도 없고 재력도 없고 시간도 없는데 반려동물은 영원히 못 키우겠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기는 어떤 걸까. 난 실은 동물은 좀 무서워하는 편이지만 아기는 정말 좋아해서, 내가 아기를 귀여워하는 모습을 보면 친척 어른들은 한결같이 ‘나중에 결혼하면 애기 잘 키우겠네~’ 라고 했다. 난 한결같이 ‘제 애가 아니라서 귀여운 거죠’ 라고 대답했다. 정말 그 말 그대로다. 난 애기를 열심히 귀여워하며 놀아주다 걔가 울거나 칭얼대면 애기 엄마한테 안겨주면 되니까. 내가 달랠 필요도, 밥을 먹일 필요도, 기저귀를 갈 필요도 없으니까. 애기가 새벽에 울어도 내가 깰 필요는 없으니까. 만약 그 모든 책임과 희생이 내 몫이 되면 그 때도 난 애기를 귀여워 할 수 있는 걸까?

이런 생각에 처음으로 형태가 생긴 건 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보고 나서였다. 그 이후론 누가 모성에 대한 얘기를 꺼내면 어김없이 케빈을 언급했다. 그렇다고 ‘제가 아이를 낳으면 사이코패스가 될 거에요’ 라고 한 건 아니었지만, 돌이켜보면 그 이상의 정돈된 말을 하지도 못했던 것 같긴 하다. 얼마 전에 본 ‘에이프릴의 딸’은 좀 더 다른 시각에서 모성을 볼 수 있게 해줬다. 같이 본 친구는 ‘굳이 그 시각을 알기 위해서 이 영화를 봐야 한다고 남한테 권하진 못할 것 같다’고 말했고 나 역시 동의했지만, 나처럼 느릿느릿한 사람에겐 그 정도 자극이 아니면 스스로 깨닫지는 못했을 시각이기도 했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점점 더 모성에 자신이 없어졌다. 내가 모성을 가진 사람인지도 모르겠고, 모성이란 게 언젠가 자연스레 생기는 건지도 모르겠고, 설령 자연스레 (임신하고 호르몬의 변화로) 생기는 것이라 해도 내가 그 변화를 증오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매 달 생리하면서 내 기분이 호르몬 따라 오락가락하는 것도 너무 싫은데, 생리통을 겪을 때마다 할 수만 있다면 배를 갈라서 자궁을 들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도대체 아기라는 건 나를 어디로 끌고 가는 걸까.

아기를 낳는 것, 그 전에 결혼을 하는 것, 그 전에 오랜 기간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서로를 알아가는 것, 그 전에 무성애자로서 누군가와 연애를 한다는 것, 하나하나가 끝이 안 보이는 산이다.

묵직한 영화를 많이 봐서 분위기 전환 좀 하고 집에 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영화 ‘미스 스티븐스’를 봤는데 정말 이도저도 아니었다. 티모시 샬라메가 잘생기고 예쁘고 귀엽고 매력 넘치고 다했던 건 인정. 하지만 그게 다였다. 주인공 스티븐스와 빌리의 관계는 동양 정서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았고, 뭐 그렇게까지 힐링되는 영화도 아니었다.

집에 와서 ‘나츠메 우인장’을 봤다. 창문을 열면 바깥 바람이 선선한 게 딱 나츠메를 만나기 좋은 계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