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을 그리워하는 날
링크드인을 통해 모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답장을 했고, 전화로 얘기를 나누기로 했다. 그리고 오늘 통화를 했다.
이직을 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단지 연락을 준 회사가 네임밸류가 워낙 있는 곳이라 답장을 안하는 게 바보짓일 거 같았다. 그거 답장한다고 이직이 되는 것도 아니고. 오늘 전화도 그랬다. 행아웃 인터뷰 한 번에 코딩 인터뷰 두 번, 도메인 인터뷰 두 번에 팀 매칭까지 있다고 얘기를 듣는데 와- 이거 분명 중간에 떨어지겠다- 생각했다. 그래 뭐, 이직을 간절히 하고 싶은 시기도 아니고, 나를 단련하는 과정 정도로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난 면접의 ㅁ도 시작하기 전에 신 포도 논리의 배수진을 쳤다.
예전에 부모님이 나를 보며 공무원을 해라, 지금이라도 수능을 공부해서 의대 준비를 해봐라, 약대 편입을 해봐라 등등 온갖 참견을 했을 땐 나 자신을 본 투 비 개발자로 포장했다. 부모님 말에 굴복하는 것처럼 보이기 싫어서, 실은 혹하면서 억지로 싫은 척을 한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당시 부모님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내가 그렇게 본 투 비 개발자, 뼛속까지 이공계, 평생 경쟁해야 하는 세계에 잘 어울리는 사람이냐 하면 역시 잘 모르겠다. 친구들끼리 해외 취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 항상 모순을 느낀다. 지금의 안정된 생활이 좋다. 한국어로 번역된 책을 읽고 한국어 자막이 입혀진 영화를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느낀다. 한국 음식은 또 얼마나 맛있는데. 나는 사람을 쉽게 사귀지도 못하고 부끄러운 것도 많아서 아마 외국에 나가면 여러모로 순탄하지 못할 것이다. 교환학생은 끝이라도 정해져있지 이직은 오로지 내 책임 내 몫이고. 근데 그렇다고 ‘난 외국이 잘 안 맞아서 평생 한국에서 살 것 같아’ 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어쩐지 내 가능성을 배신하는 것 같고, 본 투 비 ‘경쟁을 즐기는 개발자’로 나를 포장했던 그 과거의 나를 배신하는 것 같다. 칼을 뽑았다고 다 무를 써는 건 아니지만 써는 시늉이라도 해야 덜 부끄럽지 않을까. 누구에게?
회사 생활은 바쁘다. 특히 앞으로 몇 달은 정말 숨 돌릴 틈 없이 바쁜 나날이 될 것 같다. 하지만 어쨌거나 정해진 틀 안에서 예고된 만큼 바쁘다. 그 틀 안에 있다가 간만에 새로운 물결을 만나니 사실은 즐거운 마음도 있다. 뭔가 두근두근하고. 다들 면접 보기 전엔 두근두근 하면서 동시에 불안하잖아? 나만 그런 거 아니지? 문제는 내가 점점 더 쫄보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설레는 동시에 불안한 이 마음이 버겁고, 안정적인 생활을 원하는 동시에 돈키호테를 열망하는 내가 버겁다. 내가 나를 가만 내버려두지 못한다는 점에서 마조히즘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 때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내게 엄마가 학교 공부가 힘들진 않냐고 물었더니 ‘힘들긴 한데 스릴 있는 거 같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나는 기억이 안나는 이야기지만, 엄마는 그 말을 듣고 안심했다고 했다. (1학년 2학기부터 어떤 충격과 공포 스릴러 판타지가 펼쳐질진 모른 채) 지금의 나는 같은 말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언제까지 안정적인 생활에 지지 않고, 마조히즘을 품은 나 자신에게 지지 않고 이 모든 걸 스릴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