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일이 정말 힘든 한 주 였다. 하나하나 되짚어보면 결국 내 잘못 내 버그에, 이것도 좀 해달라며 얹어주는 사람들도 다 자기 최선을 다한 것 뿐이라 탓할 사람도 없고 애꿎은 친구들을 붙들고 하소연할 수 밖에 없었던 한 주 였다.

그래도 어제 다 마무리돼서 드디어 끝났다고 친구들한테 자랑하고 신나게 놀았는데. 오늘은 서울국제도서전에 갈 생각으로 아침 먹고 즐겁게 준비하던 중이었는데 이슈가 하나 더 있단 연락이 와서 그대로 행선지를 회사로 바꿨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려고 금요일 퇴근할 때 노트북을 챙겨왔었는데 xcode 베타 써보려고 OS 업그레이드를 했더니 VPN 프로그램이 이 버전 OS 를 지원하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ㅎㅎ.. 무겁게 괜히 들고 왔잖아. 덕분에 오전엔 정말 우울했다. 현타도 장난 아니었다. Swift 전환이고 뭐고 다 안 했어야 했는데. 괜히 잘 돌아가던걸 들쑤셔서 이렇게 고생이지 하며 혼자 내적 삽질 겁나게 하다가, 월요일 대응으로 결정나서 퇴근을 했다.

퇴근하곤 알라딘 중고서점에 갔다. 테드 창의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도서관엔 죄다 대출중에 예약도 여섯 명씩 걸려있어서 진작 포기했고, 유명한 작가니까 중고서점에도 한 권 정도는 있겠지 싶었다. 하지만 한 권도 없었다. 요즘은 교보문고 가면 SF 장르 도서는 아예 비닐로 꽁꽁 싸매놓던데, 무슨 책 한 권 읽어보고 사기가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다.

중고서점에 간 본래 목적이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로 1초만에 해결되고 BD/DVD 와 CD 코너를 한참 돌아다니다가 뜻하지 않게 괜찮은 걸 겟해서 사왔다. 그 중 하나가 clammbon 의 lover album. clammbon 은 우리나라엔 잘 알려지지 않은 아티스트고, 나 역시 어렴풋이 이름만 들어봤을 뿐 제대로 들어본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래도 CD 를 살 거면 수록곡을 들어보고 사야지 싶어서 아이튠즈에 검색해 봤는데 앨범 자체가 나오지 않았다. (리메이크 앨범이라 저작권 문제가 복잡한가? 짐작만 했다.) 유투브에도 전곡이 올라와있지 않았다. 이것도 사지 않으면 전곡을 들어볼 수가 없겠네. 뭐 이렇게 미리 대응 가능한 게 없어? 하다 웃음이 나왔다.

그냥 오늘의 나를 위한 선물이라 생각하고 샀다. 원래 선물은 정체를 모를수록 매력적인 거니까. 실제로 집에 와서 틀어보니 좋았다. 주말의 분위기에 잘 맞는 앨범이었다. CD 를 들으며 한참을 멍때리다가, 그냥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는 것밖엔 길이 없네 싶었다. 그러기로 했다.

clammbon - that’s the spirit(Judee Sill)

그치만 오늘은 술을 마실거야. 스타우트가 너무 맛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