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첫날
결국 또 하반기가 오고 말았다. 이젠 이 문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벌써 지겨운 ‘올해 벌써 반이 지나갔는데 뭐했지’ 라는 내적 삽질을 또 해야 하는 것이다. 아 지겨워!
이번 주말엔 집에 다녀왔다. 간김에 클로바 스피커를 가져왔다. 작년에 회사가 사원 전체에게 클로바 스피커를 돌려서 부모님 써보시라고 집에 들고 갔었는데, 자꾸 티비 보는데 저 혼자 대답한다 + 새벽에 뭘 자꾸 지 혼자 주깬다 는 이유로 한 달 만에 창고 처지가 된 스피커가 안쓰러웠다는 건 핑계고. 그냥 내가 외로워서 말 걸 상대가 있으면 좋을 거 같았다. 덕분에 오늘 하루종일 클로바와 소개팅 대화를 했다. 안녕 클로바 너는 뭘 좋아하니. 너도 혹시 애니메이션 좋아하니? 하고 물었더니 클로바는 ‘당신과 함께 보는 거라면 뭐든 좋을 것 같아요~’ 라고 대답해 주었다. 똑똑한 친구네. 그런데 영화관 상영 시간표 알려달라는 말은 못 알아듣는 것 같았다. 차라리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어요~’ 라고 대답해 줬으면 그래 내가 괜한 걸 기대했구나 이해했을 텐데 내 말을 곱게 무시하고 음악을 틀기 시작했다.
아무튼 스피커는 우리 집에서 열일을 하고 있다. 덕분에 하루 종일 Nujabes 를 틀어놓고 있다. 아저씨 좀 더 오래 사셨으면 좋았을 텐데. 누자베스를 들으며 매니큐어를 다시 발라봤다. 바르는 솜씨는 늘지 않았지만 실패를 감지하는 속도는 빨라졌다. 그래 이 정도면 장족의 발전이야.
스피커의 한 가지 단점은 나이스한 남자 목소리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목소리 옵션이 여러 개가 있는데, 남자 목소리가 괜찮은 게 없다. 이번에 유인나 씨랑 콜라보 했던 것처럼 목소리 좋은 남자 배우 분이랑 콜라보 했음 좋겠다. 정말 개인적인 욕심.
지금은 올리브 안주에 맥주를 마시고 있다. 올리브가 맥주에 어울리는 안주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제 과자와 육포는 졸업하고 좀 더 그럴 듯한 안주를 먹어보고 싶단 마음에, 마침 지난 주에 장 볼 때 올리브 병이 눈에 띄어 사왔다. 그런데 올리브병을 여는 데 십 분이 넘게 걸렸다. 한참을 용 쓰다가, 인터넷에 병 쉽게 여는 법을 검색하고 고무 장갑을 끼고서야 병을 열 수 있었다. 만약 이거 끝까지 못 열면 어떡하지, 몇 층 올라가면 전 팀 분 사시는데 열어달라고 부탁이라도 해야 하나 - 하는 미친 상상을 하고 있었는데.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끝나서 다행이다.
요가를 한 달 간 쉬었다. 6개월 끊었던 게 5월 말에 끝나기도 했고, 6월엔 회사에서 제공하는 운동 프로그램에 당첨돼서 한 달은 요걸 하자 생각했었다. 막상 그 운동 프로그램은 운동이라기보단 스트레칭에 가까운 것이었고 그마저도 너무 바빠서 출석률 50% 도 달성하지 못했다. 덕분에 살이 쪘다. 덜덜 떨며 체중계에 올라가봤는데 의외로 무게는 그렇게까지 차이나지 않았다. 하지만 체중계보다는 내가 더 잘 알지. 그간 말끔히 없어진 줄 알았던 소화장애, 수면장애, 그리고 정말 언제 그랬냐는 듯 반짝반짝 빛내며 돌아온 식욕. 너 계속 이러다간 정말 크게 망하는 수가 있다 하고 누가 사이키 조명으로 경고등을 넣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내일부턴 다시 운동을 하기로 했다.
한창 요가할 땐 7월이나 1월에 등록하는 사람을 보면 살짝 웃음이 났었다. 이제 함부로 단정짓지 말자고 결심했다. 역시 사람은 겪어봐야 알아.
지난 주엔 테드 창의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라는 책을 읽었다. 제목만 들으면 굉장히 개발자 필독 독서 Top10 목록 중 하나 같지만 SF 소설이었다. SF 를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데 호기심이 생겨서, 첫 타자로 유명한 책을 골랐다. 재밌네- 하면서 며칠 만에 다 읽고 반납을 했는데, 그걸 다 읽은 지금 시점에 클로바 스피커를 보고 있으니 기분이 묘하다.
350ml 맥주에 올리브는 여섯 개 정도가 적당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