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골방환상곡
이건 나만의 골방환상곡. 헛소리인 걸 알아도 써보는 헛소리의 시간
프리랜서의 삶이 너무 부럽다. 주말을 오롯이 나 혼자 보내는데도 혼자의 시간이 부족하다. 월화수목금토일의 일 분 일 초가 전부 내가 계획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나도 성실하게 알차게 살려고 정말 많이 노력하는 거 같은데, 회사에 앉아있으면 그 노력이 너무나 무색하다. 무엇을 위해 노력해야 할지, 이게 올바른 방향이 맞는지, 나는 아무도 모를 일에 헛발질을 하고 있는 게 아닌지 어지러운 일이 한가득이다. 집에 와서 책을 읽고, 개인 공부를 하고 집안일을 하면 그렇게 하루 마무리가 정갈할 수가 없다. 요즘 구독하는 유투버 분들의 일상이 왜 이렇게 부러운지 모르겠다.
인턴 분 과제를 뭘 드려야 할지 막막하기 그지없다. 인턴이라는 단어의 미묘함. 인턴에겐 어쩐지 좀 더 번듯하고 성장할 수 있는 과제를 줘야 할 것 같다. 내 성장도 잘 못 챙기는 요즘인데. 정작 내가 요즘 하는 일들은 다 ‘이걸 굳이 해야 한단 말인가’ 싶은 어질어질한 것들이 대부분인데. 나는 아직 주니어고, 그러니까 내 위엔 리더가 있어서 나를 좀 더 이끌어줬으면 좋겠는데, 그런 뚜렷한 방향성을 제시해 주는 사람은 없고 나는 누군가에게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니 이렇게 당황스러울 수가. 뭘 이렇게 자꾸 은근슬쩍 요구하는지 모르겠다. 은근슬쩍 멘토가 되길 기대하고 리딩을 하길 기대하고. 아니 뭐 다 떠먹여 주길 바란 건 아니지만 ‘에이 다 알면서 ㅎ’ 하고 툭툭 미는게 황당할 때가 있다. 알긴 뭘 알아 난 아무 것도 모르겠는데!
내가 원하는 진짜 괜찮은 삶이 어딘가엔 있는 걸까. 아무도 나에게 강요한 적은 없지만 나는 두 갈래의 길을 생각한다. 이대로 만족하고 꼬르륵 가라앉아 덕질용 골방에 틀어박히는 삶. 내 환상 속 워너비 같은 책장에 책과 블루레이를 잔뜩 그러모은 삶. 주말엔 프로젝터로 좋은 영화를 틀고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삶. 그리고 나머지 한 쪽은 예상조차 해 볼 수 없는 미지의 선택지지. 정말 이상한 건, 이미 전자의 삶을 살 수 있는 여건이 된다는 거다. 월세 방에 서재는 좀 무리지만 나머진 지금도 이미 실천하고 있어. 그런데 왜 이걸 고민할까. 결국 내 가장 큰 딜레마는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다. 나는 고민을 그만하고 싶은 걸까? 죽기 전까진 영원히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데, 뭔가를 고르고 뭔가를 버려야 하는데, 거기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미련의 무게가 나른하게 느껴져서 이러는 걸까.
덕업일치. 지난 일 년간 덕업일치의 기쁨과 행복을 모두에게 전파하고 다녔다. 그리고 이제는 느낀다. 그 덕업일치 빠와로 모든 걸 이겨내던 시간은 끝났다는 것. 대학교 1학년 땐 와 내가 드디어 대학생이야! 과잠도 입고 다녀! 로 두근두근 설렜지만 중간고사 기말고사 한 방씩 맞고 나면 결국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음을 실감하는 것처럼. 일 년이면 다 버텼고, 다 소진했다. 이젠 그 다음 동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제는 알게 됐다. 어딜 가도 기쁨과 행복 빠와로 버티는 건 길어봤자 일 년이고, 어쩌면 취미는 취미의 영역에 남겨두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른다는 현실 감각.
물리를 전공하고 바이오로 대학원에 갔다가 개발자가 된 친구는, 학부 시절 전산 복수전공을 하지 않은 게 후회로 남는다고 했다. 정작 나는 수학을 부전공으로만 남긴 것에 미련이 있다. 복수전공까지 가봤으면 좀 더 다른 게 보였을까. (혹시나 해서 한 번 더 언급하자면, 헛소리인 걸 알아도 써보는 헛소리의 시간) 지금은 지금의 관점에서 지금을 고민하지만, 5년쯤 지나면 분명 지금에 대해 다른 해석을 하고 있겠지. 그러니 이건 다 쓸데없는 고민이고 술 한 잔 짠하고 자면 되는 걸까. 아 근데 자고 일어나면 출근해야 되잖아…
휴가 찐하게 내고 책만 읽다 오는 여행을 하고 싶다. 주말 이틀은 너무 짧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