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쓸 때마다 이걸 작성하기 좋은 플랫폼이 어딜지 고민한다. 브런치나 미디엄 보단 네이버 블로그를 선호하지만 100% 만족하고 있지는 못하다. 무엇보다 블로그 주소에서 내 아이디가 드러나는 게 싫다. 생각없을 적 만든 아이디라 생년월일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는데 바꿀 수도 없고. 그렇지만 누군가 읽어줬으면 하는 마음은 버릴 수가 없어서, 워드 파일로 사본을 만들었다가 베어 앱에 옮겼다가 에버노트로 갈아타는둥 한달에 한번꼴로 플랫폼 이사를 하고 있다. 그래봤자 복사 붙여넣기 일뿐 별 달라지는 건 없지 않나 싶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다. 베어 앱은 기본적으로 메모용 어플리케이션이라 화면의 크기가 작아서 짧은 글도 베어 앱으로 쓰면 길어 보인다. 에버노트는 반대다. 블로그에서 쓸 때 꽤 길게 썼다고 생각했는데 에버노트에 그대로 옮겨보면 짤막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베어 앱에서 글을 쓰기 시작하면 꽤 짧은 글이 되고 에버노트에서 시작하면 무작정 긴 글이 된다. 이 정도 썼으면 충분히 다 쏟아낸 것 같은데, 하는 기준이 플랫폼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하긴 SNS 에서 프로필 사진만 바꿔도 쓰는 글의 투가 달라지는 걸 보면 ‘나다움’이란 참 쉽게 여기저기 휩쓸리는 것이다.

긴 글을 쏟아내고 난 직후엔 마음이 매우 후련했다. 뒤엉킨 털실에서 두세 가닥 정돈 풀어낸 거 같고 그랬는데, 한숨 자고 나니 허무와 침울이 쓸려왔다. 이게 뭐라고 지난 밤에 그렇게 시원해 했는지. 며칠 전 아니 에르노가 글쓰기에 대해 인터뷰한 책을 읽었는데 이런 말이 있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 시간은, 시계 속의 시간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아요. 시계를 절대 보지 않죠. 손목시계를 풀고 그것을 제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둬요. 그 상태가, 저는 그것이 항상 유일하게 진짜 같아요. 3시간 후에 별로 한 게 없다는 느낌으로 매우 불행해질지라도 중요한 것은 그 몰입 상태에 머무는 것이죠.” 앞문장은 SNS 에 업로드하기 딱 좋은 글귀고 뒷문장이 진짜네, 하는 생각을 했었다. 아니 같은 사람도 글을 쓰고 3시간 뒤에 불행해지는구나. 위안이 되기 보단 씁쓸하다. 아니는 그래도 사회에 울림을 줄 수 있는 글을 썼는데, 전 허무해 할 자격이나 있을지..

써야 하는 사람은 써야 하더라는 장강명 작가님의 말을 올해의 모토로 삼았었는데 3개월이 지나가는 이 시점에 난 그 말을 잘 지키고 있나? 말해야 하는 순간에 말하고 써야 하는 순간에 쓰고 있나. 공개된 장에서 적극적으로 말하는 건 여전히 두렵다. 트위터 타임라인에 넘쳐흐르는 분노가 조금 버겁다. 잠깐 눈을 돌려서라도 즐거운 이야기를 하고 싶고, 사적인 대화로 웃고 싶다. 나 개인이 잘 먹고 잘 쉬고 멘탈을 튼튼히 유지해야 분노도 할 수 있고 연대도 할 수 있다는 그럴 듯한 핑계도 있다. 이 모든 것에 지나친 압박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걸 알지만 되도않는 자기합리화로 도망치고 싶지도 않은데, 그 중간을 찾는 게 영 수월치 않다.

저녁은 매우 맛있는 걸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