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Global Tourism
  2. 이전 수준의 글로벌 GDP 성장
  3. 셰일오일 생산
  4. 벤쳐캐피탈에 힘입은 스타트업 붐
  5. 상업용 부동산
  6. 몇백 억을 호가하는 최고급 맨션과 호화아파트
  7. 럭셔리상품 소비

⋯라고 정리해놓은 SNS 글을 봤다.

지난 달만 해도 재택근무가 생각보다 피곤하고 외로울 뿐 내 일상이 침범당했다는 느낌은 별로 없었는데 요즘은 이 코로나가 얼마나 어마무시한 쓰나미인지 새삼 알아가고 있다. 내가 사는 동네는 땅값이 워낙 비싸서 원래도 한 가게가 일 년 이상 가질 못하는 촛불 같은 상권이었지만, 요즘은 이 동네에서 몇 년씩 굳세게 버텨왔던 가게들이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 좋은 선물을 해야 할 때 망설임 없이 갈 수 있었던 수제 초콜릿 전문점 끌라시끄에서 ‘그간 감사했습니다’ 문자를 받은 건 정말이지 충격이었다. 8년간 한 자리를 지킨 이 동네 간판가게였는데. 그런데 오늘 노트북 들고 카페 오는 길에 보니 연안식당도 임대문의 팻말을 걸어놓고 있었다. 정자와 판교에 지점을 낸 체인점이라 소상공인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는데, 내 시야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무서울 지경이다.

요즘 직장인 친구들을 만나면 한결같이 하게 되는 말이 있다. 지금 상황에 직장인이라 다행이야. 대기업의 우산 아래에 있어서, 그것도 재택근무에 아무 지장 없는 IT 산업에 종사해서 정말 다행이야. 우리가 하는 고민은 기껏해야 당분간 이직하기 빡세겠다 정도다. 그런데 내가 만약 지금 대학교 4학년이었다면? 차라리 누가 날 기절시켜달란 마음으로 벽에 머리박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개강은 개강대로 미뤄져서 학과수업 따라가기도 벅찬데 저 멀리선 항공사의 도산과 대기업의 스타트업 인수 소식이 우수수 날아들고, 취업 시장이 얼어붙고 있다는 건 지나가는 개도 알 거 같은데 내가 제일 먼저 빠따를 맞을 당사자라면 정말 골때릴 것이다. 대개 여름방학 인턴 모집 공고가 5월 쯤에 올라가는데 올해는 어느 회사 할 것 없이 사람이 작년대비 많이 몰렸다고 한다. 그 경쟁률 뚫고 지금 회사 다시 들어오라고 하면 좀 자신이 없다. 사실 직원된 내 입장에서도 고민이다. 그 지원서들을 다 검토해야 하는 담당자도 고생이고, 7월이 되면 사회적 거리두기를 안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니까. 두달간 재택근무하다 돌려보내는 거 아냐? 평가는 어떻게 하지?

모두가 너무너무 쉽게 말하던 ‘해외’ 역시 이제는 아주 복잡하고 비싸고 살떨리는 경험이 됐다. 실력만 되면 해외로 나가는 게 당연한 거라고, 해외로 나가지 않은 사람을 지루하고 하찮은 사람 취급하던 미묘한 풍토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모두가 헬조선이란 말을 쓰던 게 불과 몇 년 전인데 코로나 사태로 인해 우리는 한국이 생각보다 멀쩡한 나라라는 걸 알게 됐다. (정확히는, 생각보다 다른 나라들이 안 멀쩡했단 걸 알게 됐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을 벗어나는 것에 큰 관심이 없었던 나에겐 훌륭한 자기합리화용 근거가 생겼다. 쓸데없는 오지랖으로 상처줬던 사람들을 생각하며 내심 꼬숩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또 휴가 == 해외 여행인 것처럼 말하던 분위기도 잠잠해졌다. 작년만 해도 누구는 다낭을 다녀왔네 누구는 발리를 다녀왔네 하며 인천공항을 옆집처럼 다니는 사람이 즐비했는데. 당장 나만 해도 지난 2년간 후쿠오카만 네 번을 갔고, 네 번째 갔을 땐 이젠 이 여행도 부질없이 느껴진다고 쓸쓸해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여행과 일상의 경계가 불분명하던 삭막한 시대는 이제 끝났다. 여행은 다시 스페셜한 썸띵의 위치를 되찾았고, 아무도 특별하게 봐주지 않던 국내 여행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느 책에선가, 9.11 테러가 페미니즘에 미친 영향에 대해 읽은 기억이 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가족이나 친지, 친구를 잃는 경험을 하면서 유대가 사회의 중요한 테마로 떠올랐는데, 그게 기존의 정상가족 틀을 공고히 하는 바람에 - 가족을 보듬는 어머니상을 다시금 요구한다던지 - 페미니즘에도 여러모로 안 좋은 일이었다고. 문득 지금의 코로나는 사후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궁금해진다. 껄끄러웠던 가족도 다시 튼튼해져야 할 거 같은 이 시기에 난 내 가족과 유례없이 긴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데 다른 사람은 어떨지. 유대를 묻는 질문에, 9.11 을 겪은 미국사회가 찾은 답이 정상가족이었다면 지금 우리가 내리는 답은 뭐가 될지. 뭐 애초에 ‘우리’가 누구까지 포함하는 지부터 묻기 시작하면 끝도 없지만…

주저리주저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