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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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째 친구와 선대개 공부를 했다. 나도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수학을 잊어가는 게 아쉬워서 시작했고, 다시 연습장 펼쳐서 수식 쓰니까 재밌긴 한데, 그 재미로 커리어 고민을 조금은 잊어보자 했던 목표는 실패했다. 정리되지 않은 불안을 음절 단위로 내뱉다가 집에 돌아오면 그렇게 힘이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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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뿌리내리지 못하고 부유한다. 노동할 필요가 없는 부자들이 편한 차림으로 대형견 두 마리를 산책시키는 동네에 나는 적응하지 못했다. 크로아상 하나를 5천원에 파는 베이커리에도 적응하지 못했다. 이것은 한시적인 과정이 아니라 결말이다. 내가 원하는 건 회원제 바의 고급 위스키가 아니라 폼프리츠에서 파는 3500원짜리 꿀맥주고, 아이들과 동물과 자본이 어우러진 여유가 아니고 따분하고 지루한 그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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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내 직업에 이렇게나 확신이 없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한 결과 나에게 근본적인 목표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학자를 꿈꾸던 시절엔 멋도 모르고 세웠을 지언정 ‘저거’를 꼭 이해해보고 싶다고 목표한 지점이 있었다. 가령 왜 5차 방정식에는 근의 공식이 존재할 수 없는지 라던가. 그런데 지금은 그게 없다. 개발자라고 해서 모두가 IT 기술과 트렌드에 빠삭하고 진심으로 즐겨야 하는 건 아니지만, 나를 이 업계에 있게 하는 근본적인 원동력이 없다는 지점이 뼈아프다. 그런데 또 인정욕구는 있어서 못하긴 싫다. 다들 이러고 사는 건지 내가 유독 헤매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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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하지만 여전히 꿈꾸는 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어느 날 새하얀 부엉이가 입에 물고 올 호그와트 입학허가서고, 하나는 나와 모든 면에서 짝짝꿍이 잘 맞는 파트너다. 주말간 이런 쓸데없는 잡생각이나 하고 있는 나에게 ‘됐고 치맥 콜?’을 외쳐줄 파트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