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아하던 계절은 여름과 겨울이었다. 봄과 가을은 자꾸 어디론가 떠나야 할 것 같이 부산스럽고 아름다워서, 방 안에 가만히 앉아 무언가를 읽거나 쓰기에 적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여름엔 지겨울 정도로 썼고, 겨울엔 지겨울 정도로 읽었다. 장마가 이어지던 여름, 기막힌 구상이 떠올랐고 머리가 새하얗게 열린 것처럼 잠이 오지 않아 빗소리를 들으며 바깥이 밝아질 때까지 소설을 쓰던 날이 생각난다. 또 어느 겨울, 고향에 내려가 아무도 없던 거실 소파에 누워 강아지를 팔다리에 한 마리씩 끼고 소설을 읽던 오후가 떠오른다.”

정말 좋아하는 책에 좋아하는 구절. 색채나 향기를 노래한 단어는 거의 없는데도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문장이라 하면 이게 제일 먼저 생각난다. 여름엔 지겨울 정도로 쓰고 겨울엔 지겨울 정도로 읽는다는 말 안에 내가 추구하고픈 가치가 다 들어가있는 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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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카메라에 관심이 있었을 적엔 세상을 카메라의 시야로 보는 게 재밌었다. 눈앞의 풍경이 예쁘다고 생각해서 카메라를 들 때, 이 넓은 풍경 중 정확히 어느 직사각형이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지 생각해 보는 것. 비록 사진에 대한 열망은 한 학기만에 사그라들었지만 렌즈로 풍경을 보는 것 같아도 근본적으론 나를 보고 있다는 그 감각은 꽤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요즘은 글에 대해 그런 생각을 한다. 아주 일상적으로 여기던 것들에 대해 ‘이건 글이 될만한 경험일까?’ 하는 질문을 한번씩 하게 된다.

내 주위엔 온통 개발자 뿐이라 개발자가 아주 평범하고 무난한 직업인마냥 느껴지지만 누군가는 내 일을 신기하게 생각할 것이다. 사실 나만 해도 얼마 전에 의료기기 개발하는 친구를 만나 일 얘기를 들었는데 꽤 흥미진진했다. 내가 만드는 서비스는 오류가 크게 난들 앱이 꺼지거나 결제가 안 되거나 뭐 그 정도인데, 의료기기의 경우 오류가 나면 사람 몸에 바늘이 잘못 꽂힐 수 있어서(!) QA 가 아주 빡세다는 이야기였는데 말만 들어도 오싹했다. 의료기기 개발자의 이야기, 풀어놓으면 뭔가 재밌지 않을까? 내가 동종업계라 재밌게 느껴지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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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고 없는 타지에서 혼자 살아서, 거주지를 너무 자주 옮긴 탓에 외로운 걸까 생각하지만 그닥 상관 없다는 건 나 자신이 제일 잘 안다. 거 가끔은 감성 한 스푼 얹고 싶을 수도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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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이란 단어가 싫다. 도대체 식당에 순위를 매기자는 생각은 누가 했을까? 나 모르는 새 전국민의 혀가 통일되기라도 한 걸까? 모두의 취향이 다르고 그날그날의 상황이 다르고 밥에 돈 쓰는 스타일도 다른데, 일단 순위를 한번 매기고 나면 이 순위가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별로 중요해지지 않는다. 심지어 그 순위는 인터넷 사용에 능한 10~30대가 주로 만들었겠지? 4-50대 토박이 으르신들이 잘 아는 진또배기 식당은 여기 없는 거 아닙니까?

카페 검색하면 커피가 맛있거나 디저트가 맛있거나 인테리어가 인스타그램에 최적화되어 있는 집밖에 안 나와서 한숨이 난다. 나는 맹물에 동서 메밀차 티백 태워줘도 아무 상관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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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하는 날엔 끝나고 꼭 바로 앞의 회전초밥집을 가는게 나만의 룰이다. 그 집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접시당 1700원으로 통일된 곳으로, 이 동네에 빼곡하게 들어앉은 고오급 스시야에 비하면 아주 저렴하고 무난때때 하지만 내가 추구하는 가성비엔 딱 들어맞는다. 상담을 다닌 지가 벌써 반년이 됐으므로, 매주 그 집에 간지도 반년이 된 셈이다. 이젠 식당 아주머니가 내 얼굴을 알아보고 이따금씩 콜라 한 캔 서비스를 주실 정도가 됐다. 오늘은 초밥 레일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내 등을 톡톡 치더니 창밖을 가리키며 참새들 모이 먹는 게 대견하지 않냐는 굉장히 뜬금없는 화두를 던지셨다. 가끔 요 앞에 모이길래 바가지에 모이를 좀 담아다 내놨는데 먹는 거 보라고. 새들이 참 귀엽다고.

지금 다시 생각해도 당황스럽지만, 나는 눈이 번쩍 뜨이게 맛있는 레스토랑과 참새 짹짹 얘기를 나누는 초밥집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면 후자인 사람이다.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