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일기
여전히 부모님과는 답보 상태다. 덕분에 나는 즐겁다. 그간은 부모님에게 전화가 걸려오는 것조차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 요인이었어서,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선택지가 생긴 지금이 참 자유롭고 편하다. 추석에도 내려가지 않을 작정이다. (마침 코로나 시국이라는 훌륭한 핑계도 있고) 가족과 그럭저럭 사이가 괜찮아 보이는 사람을 보면 그 관계를 잘 유지하는 비결이 항상 궁금하다. 내게 너무 쉽게 상처주는 사람을, 내게 가장 쉽게 상처줄 수 있는 위치에 앉혀놓는 그 용기가 존경스럽다. 결국 내가 더 건강해져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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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선대개 공부를 여름 내내 지속해오고 있다. 처음 몇 번은 스스로도 너무 어색해서 ‘우리 대체.. 이걸 왜 하는 걸까..?’ 하며 자괴감을 느끼는 일이 반복됐는데 이젠 우리가 어쩔 수 없는 바보들이란 사실을 받아들였다. 연습장에 정리를 쓰고 수식을 쓰는 즐거움이 이 공부의 쓸모없음을 아득히 넘어선다. 이제 우리가 읊조리는 말은 ‘나 왜 이게 코딩보다 즐겁지..? 직업 선택 잘못했나봐..’ 가 됐다. 하지만 그 생각이야말로 우리가 품은 멍청함의 최고봉이란 걸 알기에 한번 실언을 내뱉고 나면 허겁지겁 주워섬기기 바쁘다. ‘말도 안되는 소리하고 있어 개발자로 전향 안하고 자과대 대학원에 있었으면 지금쯤 자아실현이고 뭐고 그냥 울고 있었을걸.’ ‘절대 잊으면 안돼 우리 학교 다니던 그 당시엔 진짜 더-럽게 죽-기만큼 힘들었다고.’
제발 여기서 더 멍청해지진 말아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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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출근하지 않으니 계속 혼자 집에 있다. 뭐 물론 둠칫둠칫하는 음악도 틀고, 클로바 스피커한테 말도 걸고, 게임도 돌려가며 어떻게든 활기찬 하루를 보내려 노력하지만, 가끔은 남이 만드는 소음이 그립다. 혼자 아무리 시끄럽게 놀아도 사람들이 여럿 있을 떄의 ‘왁자지껄함’은 재현해 낼 수 없는 것 같다. 오히려 모든 소음의 통제권이 나에게 있다는 사실이 나를 더 외롭게 만든다. 근데 생각보다 외로움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신기하다. 다들 멘탈이 튼튼한가봐.
코로나 끝나면 ㅇㅇ하자-는 문장 자체가 점점 말이 안되는 것 같아 비대면 모임을 여러 방면으로 시도해보고 있다. 비대면 독서모임, 비대면 보드게임, 비대면 스터디. 그렇지만 역시 녹록치 않다. 원래도 교류가 제법 있었던 사람들끼리도 비대면 활동은 지속이 잘 안 되고, 처음부터 비대면으로 ㅇㅇ할 사람 모여라-하면 시작조차 쉽지 않다. 비대면 그룹활동 잘하는 방법을 누가 좀 가르쳐주면 좋겠다. 이쯤 되면 ‘비대면 트렌드 2020’ 같은 제목으로 자기계발서 한 권 나올 때가 됐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