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지 못하는 인간
블로그 새글쓰기 페이지에 접속했다가 아무 것도 쓰지 못하고 컴퓨터를 끈 게 족히 몆 주다.
전에는 머릿속에 생각이 너무 많았다. 말 한마디 들은 걸로 에이포 한장 분량의 자아성찰을 하곤 했다. 올해 초만 해도 매일 일기를 썼었는데, 그 때 쓰던 일기를 지금 읽어보면 죄다 추측과 (이래서 그런 말을 한 게 아닐까?) 반성 (난 앞으로 이렇게 해야겠지?) 으로 가득차 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일기엔 그전날 ‘말 한마디로 내적 삽질을 계속하는 나’에 대해 반성한 기록이 쓰여있다. 가히 자아성찰 계의 영구기관이었다.
머릿속에 쌓여있던 생각을 블로그에 죄 쏟아내다 보면 이성적이고 시니컬한 글이 되곤 했다. 많진 않았지만 글을 읽어준 사람들의 평도 그랬다. 그래서 난 내가 이성적이고 시니컬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런데 상담에 가서 얘기를 하다 보면 그렇게 눈물이 난다. 그간은 대체 어디에 숨겨뒀던 건지. 이성과 시크는 다 어디로 간 거람.
상담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을 못하는 날도 점점 늘고 있다. 그간 쌓아온 자아성찰 이력 덕에 나 자신에 대해 설명하는 건 꽤 자신 있었는데, 쌓아온 게 다 바닥난 건지 머릿속에 아무 것도 떠오르는 게 없다. 다이어리를 펼쳐도 딱히 쓰고 싶은 게 없다. 나한테 있어 글쓰기는 속에 쌓인 생각을 와르르 배설하는 과정에 가까웠는데, 요즘은 소화불량에 걸리는 일이 없어서 블로그에 들어와도 쓸 말이 없다.
자학을 비워낸 만큼 즐겁고 재미난 감정을 채워넣고 싶은데 코로나가 도무지 도와주질 않는다. 지금 심정 같아선 친구들 하나하나 붙들고 ‘내가 너랑 같이 수다떠는 시간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아니… ‘하면서 사랑 고백도 할 수 있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