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의 역할을 자기 안으로 흡수하기
지난 2019년 동대문디지털플라자(DDP)에서 열린 ‘디즈니 애니메이션 특별전’을 보러 갔었다. 사실 그 이전에도 디즈니와 관련된 전시회를 볼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갈 때마다 나는 늘 똑같은 부분을 살피게 된다. 1995년 개봉작인 “포카혼타스” 와 관련된 오브제가 있는지, WW2 시기에 미국 정부를 위해 제작했던 프로파간다 영화들도 언급하는지, 1편만큼 흥행하기는 커녕 디즈니 영화의 속편은 실패한다는 징크스만 갱신했던 각종 2편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지. 물론 셋 중 하나라도 만족시킨 전시회는 여태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조금은 슬픈 일이다. 개인적으로 포카혼타스는 굉장히 의미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하는데, 디즈니는 자신들의 대표작으로 포카혼타스를 내보일 생각이 없는 걸까.) 신작 개봉에 맞춰 상업적 이득을 챙기기 위한 전시회니까, 흥행하지 못했던 작품이나 부끄러운 흑역사는 내보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곳은 디즈니가 디즈니에 대해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와 서사만을 선별해 선보이는 현장이니까.
아마 그 전시회를 보러 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디즈니의 역사와 의의에 대해 학술적인 관심을 갖고 간 게 아니었을 것이다. 학술적인 호기심을 위해서라면 전시회보다 위키피디아가 더 도움이 될 테고, 요즈음의 미술관은 예술을 음미하고 삶의 통찰을 얻겠다는 거창한 목적보다 부르주아적 시민의 주말 나들이에 더 초점을 두고 있으니까. 전시회 이전에도 모두에게 박수받던 작품들, 이미 확립된 트렌드를 재확인하는 체험에 불과하다. 여기에서 디즈니의 실수와 실패를 알고 싶어하는 내가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시회에서 누락된 이면을 신경쓰게 되는 건, 여기 진열되지 않은 나머지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만이 누락을 눈치챌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전시회에서 “포카혼타스”를 찾는 건 내가 그 작품을 재밌게 봤기 때문이고, WW2 시기에 쓰였던 프로파간다 영화들을 찾는 건 관련 내용을 다루는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내가 그것들을 몰랐다면 나는 무엇이 누락된지도 모른채 내가 본 이미지와 서사적 나열을 곧 디즈니 그 자체로 기억했을 것이다. 이미 그렇게 습득해 버린 것도 많겠지.
무언가를 해석·평가하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누락이 생긴다. 모두가 보기에 정당한 해석, 정당한 평가라는 건 당연히 불가능하다. 그런데 컨텐츠를 만들어낸 주체가 스스로 해석·평가를 시도할 때 발생하는 누락은 섬뜩하다. 대개 무언가를 해석할 때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 무관한 내용을 생략하는 행위는 책임감에 따른 것이다. 자신이 말할 수 있는 만큼만 말하며 앎의 범위를 벗어난 발언은 하지 않는 것. 비판받을 여지를 언제나 열어두는 것. 하지만 컨텐츠의 제작 과정에 엮여있는 기업이 직접 평가자를 자처하면 이런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책임을 촉구하던 가장 큰 주체가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평가의 대상이 되었다는 두려움도, 신중하게 평가해야 한다는 조심스러움도 모두 기업 내부로 흡수되어 버린다. 그리고 블랙박스 안을 들여다 볼 수 없는 소비자는 무엇이 생략된지 모른채 겉으로 드러나는 결과물만을 본다. 그 결과, 우리는 기업의 자본주의적 논리를 우리 고유의 이해인마냥 받아들인다.
컨텐츠에 대해 명확한 이권을 가지고 있는 쪽에서 해석·평가도 하려 드는 건 이상한 일 아닐까. 자서전을 스스로 쓰는 건 가능하지만 위인전을 본인이 쓰는 건 아무래도 웃긴 것처럼, 당사자이기 때문에 말할 수 있는 영역과 제3자이기 때문에 말할 수 있는 영역은 분리되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둘 다를 욕심내는 건 오만이다. 네이버웹툰의 도전만화 서비스를 볼 때도 비슷한 종류의 불편함을 느낀다. 어떤 작품이 ‘도전’의 영역이고 어떤 작품이 ‘정식’연재의 단상에 오를 수 있는지, 그런 이분법적인 판단을 할 자격이 누구에게 있을지 (있긴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컨텐츠 플랫폼의 역할이 아닌 건 확실해 보이기 때문이다. 컨텐츠에 등급을 매기고자 한다면 최소한 평가 내용은 공개되어야 할 거 같은데 도전만화에서 정식연재로 승격되는 기준은 ‘운영자 정성 평가’라는 이름으로 베일에 싸여 있고, 평가하고자하는 목적이 일절 없이 그저 기업의 편의를 위한 구분이라면 ‘도전’과 ‘정식’과 ‘승격’이라는 단어는 상당히 위험하게 들린다.
다시 디즈니 특별전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제는 전시회를 볼 때 각 오브제에 대한 설명이 아닌 큐레이션 방식을 어떻게 결정했는지에 대한 메타적 설명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 전시할 만한 가치가 있고 무엇이 그 중에서도 중심이 되어야 하는지 결정하는 과정. 그 안에 섬세한 고민들이 있다면 그 고민들을 엿보고 싶고, 사실 그냥 얼레벌레 얼렁뚱땅 진행되는 거였다면 그 민낯을 한번 구경해 보고 싶다. 그 특별전은 어떤 과정을 거쳐 기획되었는지, 수많은 작품들 중 몇 가지만을 선별해서 보여준 기준이 뭐였는지 (왜 포카혼타스는 생략되는지) 등등. 또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상업적인 디즈니 특별전도 전시회에 속한다면, 전시회라는 단어가 가지는 묘한 권위 - 왠지 공공에 속할 것만 같은 느낌 - 은 어디에서 오는 건지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