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화감
책을 읽고 디저트를 먹고 술을 마시고. 좋아하는 활동은 다 한 오늘이었는데 기분이 왜 이렇게 가라앉는지. 지독한 위화감이 든다. 컨텐츠를 이렇게 열심히 성실하게 먹어치우는데도 삶은 조금도 확장되지 않는다. 뭘하고 있는 걸까 나는. 살아있는 것과의 교류가 너무 적은 삶을 살고 있다. 회사는 점점 더 재택근무를 기반으로 돌아간다. 사내식당이 오픈했지만 난 여전히 혼자 밥을 먹는다. 혼자 코딩하고. 가끔 메신저와 줌으로 사람들을 만난다. 이걸 사회생활이라고 할 수 있나?
소개팅 어플을 아주 오랜만에 깔아봤다. 다운받은지 하루만에 결론이 났다. 역시 이건 아니다. 연애를 원하는 게 아냐. 독점적인 관계를 원하는 게 아냐. 애정이 필요한 것도 아냐. 나는 다만 사라지지 않을 관계를 원해.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그저 ‘그렇게 하기로 정했기 때문에’ 나와 주 1회 정돈 만나서 대화를 해줄 사람을 원해. 이건 결국 가족을 원하는 걸까?
하루종일 컴퓨터를 뚱땅뚱땅 거리는 일은 너무 허무하다. 뭘 되게 열심히 했지만 사실 세상에 쓸모 있는 건 아무 것도 만들지 않았어. 살아있는 것들에게는 조금도 기여하지 않았어.
그나마 주기적으로 얼굴 보는 회사 사람들. 그 커뮤니티 안에서 공고한 위치를 얻고 싶어 발버둥치는 나. 하지만 회사 사람들은 떠난다. 그건 너무 당연하고 또 너무 쉽다. 그렇게 됐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하면 끝난다. 난 정말 뭘하고 있는 걸까?
동물을 키우면 좀 도움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