캣츠랩 한국 퀴어문학 강의 아카이브
1주차. 포스트페미니즘과 퀴어의 시민화
이 강의가 시작된 계기;
페미니즘 리부트, 페미니즘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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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희수 하사 사건. 맞아 사실 군복 입은 트랜스젠더 ← 좀처럼 접하기 힘들죠 ; 국가와 퀴어의 관계. 트랜스젠더 혐오 사건이지만 노동권 박탈 사건. 숙명여대 입학 거부 사건도 교육권 박탈. 기본적인 시민권의 박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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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들의 추방을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주장하던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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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떨 땐 안전의 언어가 되기도 어떨 땐 공정의 언어가 되었다가 어떨 땐 경제가 되기도 함. 현재 페미니즘은 무엇으로 상상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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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퀴어문화축제는 경찰들의 비호 하에 - 안전하고 아늑한 동그라미 공간 안에서만 - 가능한 것이 되어버림. 퀴어 친화적인 시민들끼리만 즐기는, 표백되고 무해한 축제가 되어가고 있음
온라인 매체를 경유한 직접행동
- 이 모든 것의 동력은 SNS 였다. SNS 를 통한 자기재현의 가능성. 90년대 이후로 여성의 학업 성취도, 대학 진학율은 남성보다 높았음. 여성이 남성보다 더 똑똑해졌다고는 말을 못 해도 공부/교육이 안전한 길이라고 생각한 걸까? 이 사람들이 페미니즘 리부트의 주체들이었고, 대의(representation)되기를 거부하는 주체들. 재현되길 거부하는 주체들. 기존 재현 세계에 대한 불신과 기각.
가해자,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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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는 단죄해야 하고 피해자는 연대해야 한다는 공식이 생김. 이분법으로 나눠지지 않는 면이 당연히 있음. 입금이 최고의 연대다 하면서 피해자에게 연대했다가 피해자에게 흠이 있다는 게 알려지면 환불하고 책 구매 취소하고.. 이런 소비 정치의 강화가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의 주요 특징 중 하나. 매뉴얼을 만드는데 급급했던 것 같다. 복잡한 맥락을 생각하기보다는 ‘피해자와 가해자는 분리해야 한다’ 등등.. 페미니즘 =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언어로 이해되는 측면이 있었음. 사회복지 서비스처럼 여겨진다. 탈정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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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은 반성을 하는 게 아니라 김앤장을 간다. 이것만 다루는 사법 시장이 생김. 성폭력 소송 시장의 형성. 이건 그냥 누가 더 많은 돈을 쓸 수 있는가 하는 자본의 싸움이 됨. ㅇㅇ계 성폭력, 문단 내 성폭력 → 공동체를 지목하면서 성폭력 문제를 제기했는데 어느 순간 공동체는 없어지고 개인의 싸움이 되었다. 90년대에 운동권 성폭력 문제를 공론화하면서 가해자 전원의 실명을 공개했던 ‘100인위 사건’. 공동체에서 가해자들이 부끄러움을 느끼길 바라서.
능력주의 체화
- 20대의 여성은 더 이상 여성을 약자로 생각하지 않음. 보상만 동등하게 주어지면, 능력만 가지면 남성과 동등하다고 생각. 네가 여자라고 해서 못 할 건 없다. 알파걸 담론.
결론; 페미니즘 리부트의 정치적 임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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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을 약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사회적 타자를 계속 만들어내고 소수자 혐오를 반복, 능력주의와 결합.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포스트 페미니즘’ 용어를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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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포스트 페미니즘의 특성은 무엇일까? 모든 것이 소비와 연결되고, 모두가 자기 계발을 하고, 신자유주의적 여성성과 긴밀하게 관련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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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의 권리 신장 (평등의 확산) + 신자유주의적 능력주의 (계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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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포스트 페미니즘이라고 말하면 페미니즘 다음에 이게 온, 시간-단계적인 역사로 상상하게 만든다. 시간은 그렇게 단선적이지 않은데 마치 2000년대 이후에 태어난 여자는 전부 포스트 페미니즘 세대인 마냥 세대론적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그 외 핵심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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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 정치 : 권력을 분배받지 못한 이들이 정치적 주체화를 위해 채택한 전략적 정체성. 하지만 요즘 여성들은 자신을 약자, 소수자로 지칭하지 않고 권리로 말한다. 나는 ㅇㅇ할 권리가 있다. 내가 어떤 권리의 주체라고 말하는 방식으로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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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권 : 공동체에 소속되고 공동체의 정치에 참여할 권리 + 시민과 비시민을 가르는 포섭과 배제의 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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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시민권. 시민권의 젠더화 및 퀴어화 : 누가 시민이 될 것인가? 프랑스 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시민의 정의에서 여성을 배제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음. 중립적, 무성적 존재처럼 보이지만 실은 이성애자 남성 기준. 성별도 없고 신체도 없고 섹슈얼리티도 없는 그런 존재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요. 추상적 개인이란 없다! ← 시민권을 젠더화해야 한다는 주장. 내가 남성/여성으로서 시민권을 갖는 것 플러스 남성 또는 여성 중 하나로 반드시 식별되지 않을 권리. 응답하지 않을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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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적 평등 (리사 두건) : 일부 소수자에게 더 많은 권리를 분배함으로써 평등의 확장을 도모하는 듯하지만, 끊임없이 소수자를 식별하고 위계화해 계급 질서를 유지, 강화하는 정치. 소수자적 정체성을 갖고 있지만 그밖에 다른 면에서는 기득권적 면을 갖고 있는 소수자들에게만 자원이 몰림. 실제로 힙한 트렌드 중 하나가 해외에서 동성 결혼을 보란듯이 화려하게 하고 오는 것인데 이거 하려면 영어도 잘해야 되고 돈도 많아야 하고 정보도 있어야 하고⋯
인권, 시민권 담론과 소수자정치의 제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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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와 상품의 유통. 병리적 존재에서 힙스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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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동성애자 운동의 본격화 (PC 통신 동호회) 가시화와 규범화. 2001년 국가인권위원회 설치.
2주차. 오토픽션 논쟁과 퀴어(문학)의 시민권
여성문학, 퀴어문학의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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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은 여성화됐다! 는 주장 (??) 문학상 타는 사람들이 대부분 여성이다. 여성의 문제를 가시화시키는 소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문학계의 키워드가 페미니즘, 퀴어, 90년대생이 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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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고민 : 그 퀴어문학이 정말로 퀴어한가. 퀴어한 것은 무엇인가? 가령 『82년생 김지영』 이 여성문학의 효시로 부상했는데 이 여성문학들은 왜 수도권 거주-화이트컬러 직종-2,30대-이성애자-비장애인 여성 주인공만을 압도적으로 선호하는가. 이 여성서사란 페미니즘 리부트가 만들어 낸 여성 재현의 한 경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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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월드컵 이후로 ‘우리 이제 경제강국이다’ 분위기가 퍼지면서 우리가 노동력을 외국에 파는 나라가 아니라 사는 나라가 됨. 그래서 2000년대 이후로 우리나라에 이주한 사람들의 이야기 - 당시 명칭은 다문화 소설 - 이 퍼졌었음. 탈북 여성, 이주민 여성, 노숙인 여성 등등. 그런데 2010년 이후의 ‘여성 서사’에서는 그런 사람을 찾아볼 수 없음. 대기업까진 아니라도 다 승진하고 월급 받고 그런 여성들이 나와요. 여성들은 아직도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 단순 사무직에 종사하는 사람이 훨씬 많은데도 현재 여성서사에 등장하는 주인공 타입의 여성들이 표준으로 여겨진다. 왜 이것이 ‘보통 여성’으로 회자되었는가? 퀴어 문학도 마찬가지. 적어도 병리적인 존재로 등장하지만 너무나 세속적이고 평범함. 우리도 설빙 가고 공차 가고 평범한 사람들이다 ← 를 어필하는데 상당히 공을 들임. 퀴어라 함은 무릇 비규범적인 친밀한 관계를 맺는 법인데 왜 자꾸 제도적으로 승인받고자 하는가? 이것의 정치적 효과는 무엇인가?
여성서사가 다루는 여성, 퀴어서사가 다루는 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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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시민권을 주장한다. 시민권이란 보편적인 권리인데, 보편적인 권리를 요구하는 동시에 여성의 소수성을 존중받길 요구한다. 동일성과 차이에 기반을 둔 시민권 서사의 모색. ex) 여성의 안전을 위해 남성과 트랜스 여성을 배제하는 게 맞나? ‘우리도 남들처럼’ 시민권을 갖게 해 달라고 할 때 이 ‘남들처럼’은 평등의 언어인 동시에 정상시민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킨다. 우리도 남자처럼 군대 가요. 우리도 남자처럼 돈 써요! 모범적인 군인/노동자/소비자 되기의 방식으로 시도되는 시민-되기의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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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서사는 정확히 공적 영역에서 여성이 점하는 위치, 권리를 다룬다. 저 **는 하는 일도 없는데 월급 꼬박꼬박 받는다 같은 불만. 투기도 페미니즘 실천이다 이 삶을 벗어나기 위한 거니까(ㅋㅋ) 이 여성서사 속 여성들은 돈 버는 것에 굉장히 민감하고 자본주의적 합리성, 기업가적 교양, 투기의 권리, 고학력 여성의 딜레마 등에 기반해 작동하는 ‘보통 여성 페미니스트’ 라는 규범. 굉-장히 중산층. 그 유리천장 경험하는 여성 실제로 그렇게 많지 않다. 왜냐면 대부분의 여성은 남성 여성이 섞여 있는 직장이 아니라 여성들끼리 모여 있는 저임금 직장에 더 몰려 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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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의 김지영은 포스트 페미니즘 시대의 여성. 공부했고 대학 갔고 직장 다니고. 나 여성이라서 차별 당했어 를 강조하는 게 아니라 나 남자애들과 똑같이 살려고 노력했고 능력을 키웠다 근데 그 노력이 올바르게 보상받지 않는다가 주 메시지. 여성이 겪는 광범위한 차별보다는 끊임없이 자기계발했던 여성들의 억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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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문학에서도 ‘퀴어가족’. 내가 선택한 파트너와 안전하게 관계를 맺을 권리. 한국 사회에서 도대체 가족이란 무엇인가??? 꼭 결혼을 하지 않아도 시민답게 살 권리가 중요한 것이 아닌가?? 가족 제도와 신자유주의적 지배가 한 세트로 오는 것이 아닌가??
따라오는 각종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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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로 등장하는 주인공 = 저항 담론의 인격화 (ㅠㅠ) 그죠 퀴어일뿐 다른 것이 모두 비-퀴어와 동일하다면 퀴어 주인공을 쓸 이유가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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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문학의 정의. 퀴어문학의 미학, 비평의 방법론. 창작방법론. 독법의 계발. 퀴어대중의 자기발화. 실제로 많은 팬픽들이 ‘퀴어한 독해’에서 출발하지 않겠어요? 주인공이나 창작자의 정체성에 의해 결정된다기 보다는 그곳에 접속하는 이들의 정동, 한국문학장의 규범성을 퀴어링하는 수행적 장소.
그렇다면 퀴어 문학은 신종 장르인가? 퀴어 문학의 불안정한 시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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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즈비언 서사 = 여성 서사인가요? 남자와의 사랑을 공포로 받아들이는 시대의 불가피한 징후 (심진경) → 일리 있는 말이긴 한데 그럼 레즈비언 서사는 이성애의 대체재로서만 등장하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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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 문학 = 이성애적 교제와 결혼의 번거로움을 피해 게이 섹스를 지켜 보며 ‘자신의 낭만적 사랑의 환상을 소비하는 이성애자 여성들의 관음’ (서동진) 예로부터 BL에 많이 가해졌던 비판이죠⋯ 그럼 BL을 보는 여성은 다 이성애자 여성이어야 하는데? 이렇게 단언할 수는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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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퀴어문학 (Kueer. 놀랍게도 이런 용어가 있대요!) 을 해외에 수출 번역하면서도 - 한국 문학의 대표 주자가 여성 서사, 퀴어 서사가 되었음에도 - 이것에 대해 아무 말도 안함. 한국 문학이 곧 세계적이다 어쩌구만 하고 있을 뿐. 『82년생 김지영』 이 페미니즘 서사로 읽히며 분석된 것과 달리 부커상 후보가 되었던 『대도시의 사랑법』 에 대해선 국제 독자들이 보는 한국 퀴어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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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문학이 아무리 대세가 되었다 해도 퀴어정치학의 운동성은 억압되고 여전히 차금법조차 제정되지 않았는데 퀴어한 라이프스타일만이 상품으로 유통되는 상황에서 퀴어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서동진) 사실상 그냥 종족지. 이런 사람도 있어. 특정한 종류의 인간들을 보여주는데 그친다. 정말 ‘문학’이 될 수 있는가?
2020 오토픽션 논쟁의 양상 및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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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문학의 위치는 아직 불안정하다. 이젠 좀 안정적이지 않나? 생각했던 시기에 터진 것이 2020년 김봉곤 소설에 대해 제기된 사적 대화 무단인용 및 아웃팅 혐의 + 2020년 김세희 소설에 대해 제기된 아웃팅 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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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쓰는 것과 허구를 쓰는 것의 결합. 김봉곤과 김세희 작가는 자기가 쓰는 것이 자전-서사라는 걸 알고 있었던 사람들. 이 작가들에 대한 비평을 쓸 때도 오토픽션 개념을 썼었다. 내가 나에게 솔직하게 ← 이 글쓰기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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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사소설이라는 말이 있었지⋯. 사소설은 일본 근대문학의 전통이고, 사소설의 특징은 내가 스스로도 숨기고 싶고 사회적으로도 지탄받는 행위, 생각에 대해 쓰는 것. 내가 그런 삿된 생각을 했다는 것을 적어도 나에게는 솔직하게 고백하는 일. 문제적이고 수치스럽고 치욕적인 생각이어야 사소설이 성립. 근데 결국 ‘적어도 나는 나에게 솔직했다’고 주장하며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는 정치 양식으로 기능했다는 해석도 있음. 아니 에르노의 소설도 60대 여성이 20대 남성에게 느끼는 욕정, 사회적으로 금지되었던 낙태 등을 소재로 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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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퀴어문학에서 사소설, 오토픽션 전략이 자주 쓰이는가? → 퀴어문학의 테크놀로지다. 실제 작가를 연상케 하는 내포작가를 설정함으로써 허구와 실재의 불일치에 기인한 독서의 쾌락을 발생시키고 퀴어문학의 새로운 수행성을 창안해내려는 전략. 비트랜스젠더 이성애자를 기본값으로 설정하는 한국사회에서 ‘퀴어한’ 존재는 비가시화되거나 타자화될 뿐임을 의식하는 퀴어 주체엑 ‘오토픽션-쓰기’는 자기 이미지를 형성하고 재현하는 방도를 발굴(윤경희) 하려는 자기배려의 기술이자, 글쓰기의 질료가 될 만한 ‘나’를 창출함으로써 ‘퀴어-되기’를 수행하는 과정(김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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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문학 쓰기는 곧 나를 퀴어로 만드는 일. 가령 학생은 공부할 때만 학생임. 집에서 아침에 김치찌개 먹을 때도 학생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진 않음. 퀴어 정체성은 내가 나를 퀴어로 생각하고 해석할 때만 유지된다.
오토픽션 트러블 : 문학계의 자기 반성이 시작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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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역시 기승전자기비판. 결국 가장 많이 등장한 건 문학의 윤리 및 비평의 책임을 환기하는 비평가들의 자기비판. ‘새로움’이라는 허구의 기표를 선점하려는 세대론적 욕망의 산물이었다(강동호) 출판사의 상업적 조치 및 법적 판단만을 기다리게 된 비평의 무력감(심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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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적어도 김봉곤 소설에 제기된 혐의는 성소수자 아웃팅에 대한 것이 아니라 수치스러운 정동에 대한 것. 내가 부끄러워하는 어떤 감정이 공개됐다. ‘정동적 승인’이 오토픽션의 새로운 관건으로 도출됨(김경태). 퀴어인 것을 마음 놓고 향유할 수 있는 자유…
누락된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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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팅을 둘러싼 사회정치적 맥락, 즉 비규범적 성별 성애 실천은 어째서 수치심의 정동을 유발하는 것으로 간주돼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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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왜 사적인 것으로만 다뤄져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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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자유 및 그에 대한 보호는 어째서 절대로 침해돼서는 안 되는 가치로 여겨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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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문학의 오토픽션 전략이 근본적으로 퀴어의 ‘사회적 자유’에 대한 제한을 전제로 작동한다는 점 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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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픽션 논쟁은 퀴어에 대한 재현은 허용하지만, 퀴어를 여전히 보호받아야 할 사생활의 영역으로 분리한다. ‘사생활’은 남성중심적, 이성애규범적, 자본주의적 통치의 레짐을 작동시키기 위해 할당된 젠더화, 계급화, 인종화된 영역. 지금 요구되는 것은 퀴어시민이 누려야 하는 ‘사생활의 자유’가 아니라 퀴어를 ‘사생활’의 영역으로 분리하는 이 흐름! 퀴어가 사생활의 권리를 누릴 수 있으면 퀴어 시민권이 획득되는 것처럼 보는 이 왜곡!
Q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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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밍아웃 굉장히 서구적인 관습 아닌가⋯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갑자기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얘기하고⋯ I 에게 이런 관습 의미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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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맞아 작가의 당사자성 너무 중요하게 여겨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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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화, 타자화 이런 게 거의 악마적인 용어로 쓰이는 것 같음. 근데 이건 재현할 때 당연히 경유할 수 밖에 없는 과정. 대상화가 없으면 인식이 불가능한 걸요. 사적 대화-무단-도용 ← 전부 소유권의 언어. 우리는 왜 늘 이걸 소유권의 문제로 묘사하게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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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맞아 작가의 당사자성으로 퀴어 문학 중 가짜와 진짜를 가리게 되면 독서 재미없어요 이성애 포르노를 보면서 퀴어 맥락을 만들 수 있어요 김봉곤은 오히려 내가 나에게 솔직하지 못할까봐 나도 모르게 퀴어를 자칫 착하게 건전하게 그릴까봐 걱정하는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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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애자와 동성애자의 구분, 공적인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과 사적인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의 구분. 어떤 것을 취사선택해서 어떻게 말할 것인가⋯
3주차. 정상시민의 조건과 퀴어 리버럴리즘
퀴어 리버럴리즘이 퀴어의 정체성을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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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머니 시장의 형성. 가족부양의 부담이 없다고 여겨지는 퀴어가 매력적인 소비자로 부상. 재스푸아의 글에서 호모내셔널리즘과 결합. 오사마 빈 라덴은 사실 게이다 낙타랑 섹스한다더라 수군수군.. 반면 백인 게이의 신체는 그저 나라에 충성하는 군인으로 소비. 성정체성으로서의 퀴어가 중요한 게 아니라 퀴어의 배치가 중요하다. 배치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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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팔레스타인의 퀴어들을 구해야 돼! 그러니까 팔레스타인에 대한 폭력적인 침공은 정당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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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규범성. 혼인의 권리를 획득하기 위해 로비 정치를 엄청 많이 했던 게이 단체들. 다른 투쟁 단체들과 전혀 연대하지 않음. 마치 결혼만 할 수 있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군다..? 이성애규범성과 갈등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강화함
박상영 소설 비평하기
- 모범적인 군인 되기. 군대에서의 위험한 섹스, 군대로부터의 축출, 군인의 죽음. 비트랜스젠더 비장애인 이성애자 남성에게 부여되는 시민권 획득을 위한 전략. 어떻게 보면 동성애규범성의 실천. 그러나 미완의 벽화 → 결국 말끔한 해피엔딩에 실패
4주차. 동성애규범성과 애도의 정치
안전과 무해함, 시민권의 조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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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리부트 이후로 안전에 대한 강조가 생김. 이 연극에는 자살, 강간 등의 소재가 있다 어쩌구 → 이게 몸에 대한 경계를 더 강화하고 나를 언제나 피해자로 생각. 안전을 지키기 위해 누가 내 편이고 아닌지 구분하기 시작. 누가 여성인가. 여성만으로 구성된 페미니즘. 혜화역 시위의 안전 수칙들 → 익명화 및 대표 없음의 전략, 외부 세력 배제. 굉장히 까다로워지는 조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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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의 물신화와 자기보존의 정치학으로서의 퀴어/페미니즘.
안전, 여성연대, 퀴어 커뮤니티
- 안전을 기반으로 한 결속과 유대의 상상력 (’생존 퀴어’로서의 레즈비언). 레즈비언은 늘 걱정이 많아.. 생명에 대한 안전, 경제적 생존. 섹슈얼리티를 중심으로 한 호명인데도 섹슈얼에 대한 향락이 잘 나오지 않음. 아포칼립스, 고립.
비시민의 초상 : 문란하고 불성실한 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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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외로움 없는 삼십대 모임. 익명의 남자와, 터부시되는 공간에서, 콘돔 없이, 비위생적이고 위험한 섹스에 탐닉하는, 성적 열정이 과잉된 게이의 일상과 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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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도 에세이로도 환원되지 않는 일탈적인 어법과 분열적인 다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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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규정하는 방식에서 벗어난 성적 행위와 친밀성의 관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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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 자본, 외모, 연령, 거주 지역을 기준으로 서열화된 게이 섹슈얼리티 위계의 최하위에 있는 섹슈얼리티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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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어떻게 이런 걸 쓰게 되었나???
시민권의 조건과 재현의 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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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현될 만한 성소수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책이 여태 안 나왔던 게 아닌가. 1980년대 게이 프라이드 운동은 게이와 에이즈의 연결고리를 부정하고 게이 섹스가 문란하다는 세간의 인식을 교정하는데 몰두. 게이 커뮤니티가 세이프섹스 매뉴얼을 배포해 대중화하자, 이전까지 존속해 온 스톤월 이전 세대의 다채롭고 실험적이고 부적절한 성적 문화가 빠르게 사라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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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에 관한 비과학적 인식은 수정되었지만 게이 섹스의 비규범성과 특수성이 재현의 기회를 거의 확보하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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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의 애도 불가능성 : 에이즈 위기로 인해 상실한 것이 단지 우리의 친구, 이웃, 파트너, 공동체의 성원만이 아니라, 우리가 기껑디 창조하고 누려온 성적 문화, 즉 근대가 문명의 목록에서 기각해온 게이들의 비규범적 성적 문화라면 그것 또한 애도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동성애규범성과 애도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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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 : melancholia. 대상의 상실이 자신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느끼는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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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 : trauer. 대상을 상실한 자신의 상태를 수용하고 ‘정상적인’ 상태를 회복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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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의 정치 : “국가의 공식 애도로부터 배제된 죽음들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사회 정의를 실현하도록 국가와 사회에 호소하고, 촉구하고, 압박함으로써 죽은 자에 대한 충실을 다하려고 하는 남은 자들의 모든 실천적 행동을 함축하는 것” (정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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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의 형식 : 애도의 조건과 한계를 면밀히 살필 것을 요구. 애도의 형식을 질문하는 것이 곧 애도의 정치에 기입되지 못한 타자성을 환기하는 작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