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언에게 한번씩 빠질 때가 있다. 나 이 사람 개그 너무 좋아! 내 취향이야! 하고 처음으로 꽂혔던 건 중학생 때 우연히 인터넷에서 접했던 진나이 토모노리의 원맨쇼 콩트였다. 진나이 토모노리는 지금 봐도 웃기다. 배꼽이 빠지도록 절절하게 웃기진 않지만 늘 자기만의 아이디어로 승부를 하고 누구나 편하게 웃을 수 있는 코미디를 한다. 한국 코미디를 보면서 한번도 재밌다고 느끼지 못했던 내겐 신선한 충격이었고, 타인을 조롱하거나 외모를 망가뜨리지 않고도 웃음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랬다. 일본의 코미디 문화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보케(바보짓)과 츳코미(딴지 걸기)의 패턴을 제대로 배운 것도 그를 통해서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시절엔 더더욱 사교적이지 못했던 내가 명절에 사촌동생들과 함께 그의 코미디 영상을 보며 우당탕탕 웃었던 기억 역시, 그를 지금까지 좋게 기억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최근엔 Gianmarco Soresi 라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에게 빠져 있다. 그에게 도달하기까지 유튜브에서 스쳐지나간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정말 많다. 아시안 스테레오타입을 메인 소재로 삼는 Jimmy O.Yang, 양육과 결혼 소재를 자주 쓰는 Sindhu Vee, 약간씩 선 넘는 개그를 하고 빠르게 회수하는 Matt Rife, 좀 더 거칠고 때로는 hateful 에 가까운 코미디를 하는 Akaash Singh 까지, 요즘 영어권에서 인기 있다는 코미디언들의 스탠드업 영상을 꽤 많이 봤다. 그리고 그 중 나의 원픽이 Gianmarco Soresi 다.

그의 코미디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사회적인 소재를 망설임 없이 활용하기 때문이다.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정치적 사안 - 예를 들면 미국 대선 - 부터 반유대주의, 인종차별, 퀴어, 총기 규제, AI 기술, 안락사, 정말 다양하고 흥미로운 소재들을 가감없이 언급한다. 좋아하는 영상이 워낙 많아서 한두개만 꼽긴 어렵지만 Liberals are Hypocritical About Guns 클립의 0분 55초 펀치라인은 몇 번을 들어도 기립박수를 치게 된다. 저 모든 레이블들이 헷갈리고 너무 많다는 건 퀴어 커뮤니티에 속해 있는 사람도 웃으며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기에. 그걸 하필 gun show 와 엮어서 말한다는 점은 좀 대담하기도 하고.

그의 코미디에 대해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고 느끼는데, 나는 농담을 할 때 반드시 어느 누구도 기분 나쁘게 하지 않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농담은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코미디는 필연적으로 어떤 스테레오타입을 갖고 와서 놀리기 마련이고, 중요한 건 놀리는 대상이 누군가와 그 태도다. Gianmarco Soresi 의 코미디는 대체로 현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정치인들, 기업들, 유명세를 이용해 성범죄를 저지르고 다녔던 셀럽 등 강자들을 대상으로 한다. 그는 유대인으로서 유대교와 관련된 온갖 농담을 하고 다니지만 이스라엘의 행보에는 반대하고, 그런 동시에 할리우드 진출을 꿈꾸는 자신이 이스라엘을 강도 높게 언급하기가 쉽지 않음을 겸연쩍게 고백하기도 한다.

​약자를 향한 짓궂은 농담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가 성소수자를 농담의 소재로 삼은 클립 영상을 보면 자신이 농담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기뻐하는 퀴어 팬들의 댓글을 꼭 한두개씩 베스트 섹션에서 만날 수 있다. 농담의 대상이 된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조롱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는 전제 하에, 누군가를 농담의 대상으로 삼고 놀리는 건 그 사람을 불편해하지 않고 같은 집단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인다는 일종의 친애의 표현이 될 수 있다. 나를 함부로 건드려선 안 되는 낯설고 불편한 타인으로 보기보다는 농담하고 장난쳐도 되는 사람으로 봐주는 거니까. 모두가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고 싶어하는 요즘 같은 시대엔 그런 선을 먼저 넘어주는 사람도 잘 없다.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말은, Gianmarco Soresi 가 보다 윤리적인 코미디를 하고 다른 코미디언들은 덜 그렇다는 판단은 잠시 유보했으면 한다는 것이다. 스탠드업 코미디는 관중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진행 자체를 관중과 소통하며 한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관중이 그 코미디언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Jimmy O.Yang 이 아시안 남성이기 때문에 관객들은 그가 아시안에 대한 코미디를 해주길 바라고, Sindhu Vee 가 인도 출신의 중년 여성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녀가 들려줄 법한 인도 사회와 삶에 대한 이야기를 기대한다. 다소 거칠고 공격적인 코미디를 하는 Akaash Singh 의 쇼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그의 농담은 대체로 내게 어떤 잔여물 같은 불편함을 준다. 그가 하는 코미디 쇼의 관객은 대부분 인도-파키스탄 남성들이고 그는 관객석에 인도인 남성과 백인 여성 커플이 앉아 있으면 남성 관객에게 ‘오, 너 성공했네.’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다. 그걸 불편하다고 느끼는 동시에 완전히 타 문화권에 있는 내가 이런 판단을 즉석에서 내리는 게 다소 오만하게 느껴지기도 해서, 옳다/그르다의 표현은 여기에 걸맞지 않다고 생각이 된다. 어쨌건 저 커뮤니티 안에서 그의 농담은 유쾌한 접착제로 기능한다. 페미니즘에는 위배될지언정, 누군가는 웃음을 얻고 돌아간다.

아무튼 Gianmarco Soresi 가 사회적인 소재를 잘 다룬다는 것이 꼭 윤리적으로 무결하게 다룬다는 의미는 아니다. 내가 본 스탠드업 코미디언들 중에선 가장 리버럴에 가깝고, 기꺼이 Happy Pride Month 를 외치고, 대놓고 트럼프 암살 시도에 대해 언급하며 시원한 정치 풍자 코미디를 하긴 하지만 거기에 모든 정신을 쏟는 것은 아니다. 그는 매번 새롭게 경계를 넘나들고,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의 코미디가 더더욱 흥미롭다. 그리고 이틀 전에 올라온 위 영상을 보고서 마침내 오늘의 추천글을 쓰게 됐다.

Stand-up propaganda is never funny. 이 짧은 영상이 그의 많은 것을 설명한다. 이걸 팟캐스트의 대화 주제로 갖고 왔다는 점, 이 영상 덕분에 댓글을 다는 사람들도 프로파간다는 어째서 funny 하지 않은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는 점이 정말 좋다. 이런 컨텐츠가 있으니까 인터넷 서핑을 영원히 못 그만두는 게 아닌가 싶다.

2주 전에 올라온 반유대주의 조크도 진짜 재밌었다. well made 라고밖에는 표현할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