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로 가는 길

기말 과제로 봤던 영화. 여주인공이 강간 당했다고 거짓 진술하는 부분 때문에 네이버 평점은 상당히 낮던데, 난 오히려 그 부분이 이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클라이막스라고 생각했다. 낯선 문화에서 불안과 해방을 경험한 주인공의 심리에 대해서만 얘기해도 하루가 모자랄 거 같다. 그리고 영화 OST 가 굉장히 멋지다. 영화 보고선 OST 반복재생 하면서 짜이를 마셨다.

해피 아워

전에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특별전 할 때 한번 봤었지만 이번에 2회차 관람을 했다. 5시간 반짜리 영화를 2회차 관람할 수 있는 나 자신이 좀 대견했다. 그리고 좋은 영화는 두 번 봐도 좋은 영화였다.

일본은 이렇다- 같은 말을 함부로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간 봐왔던 일본 애니메이션과 JPOP 노래 가사를 보면 일본은 참 마음을 전하고 타인과 연결되는 것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가도 ‘안타깝게 연결되지 못하는’ 자아에 취해있다는 인상을 받는데, 그래서 그런 아련하고 쓸쓸하게 홀로되는 감성을 깨부수고 우리 대화 좀 하자! 하는 작품들에 더 마음이 간다 애니메이션으로는 “사라잔마이”가 그랬고 영화로는 “해피 아워”와 “아사코”가 그랬다. 타인의 삶을 침범한다는 건 어쩔 수 없이 폭력적이고, 가해자가 되기 싫어 적당한 거리를 계속 유지하면 영원히 타인에겐 도달하지 못하는 거 같아.

엔칸토: 마법의 세계

속초 여행 가 있는동안 봤다. 화법은 옛날의 디즈니와 많이 달라졌지만 가족의 소중함을 말한다는 점은 역시나 디즈니 다웠다. 양육자의 가르침을 아동-주인공이 부정하며 성장하는 스토리라인이 “겨울왕국”과 “코코”를 타고 “엔칸토”로 이어졌다는 느낌. 그전의 작품에도 그런 요소가 없지는 않았는데 (사실 대부분의 주인공들이 양육자와 마찰을 일으키며 작품의 오프닝을 열었는데) 그때는 결국 가부장제의 질서 안으로 아동-주인공이 다시 들어오는 것으로 해피엔딩이 정의되었다면 양육자의 틀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건 “겨울왕국” 이 첫 시작이지 않았나 싶다. 부모 없이 자매 둘이서 스토리를 완성시키는 것도 그렇고. “엔칸토”에선 한 발 더 나가서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는 게 좋았다. 이사벨라와 루이사, 브루노를 거쳐 할머니까지 각자 자기 자리에서 애쓴 결과가 이거였다는 걸 적극적으로 말해주는 게 인상적이었다. 어른의 사정을 합리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동이 자기 양육자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 이런 커뮤니케이션은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다 떠나서 노래가 너무 좋았다! 노래 구성이 꽤나 케이팝 스러워서 듣는 내내 디즈니의 변화를 실감했다.

보는 내내 한스 짐머 아저씨가 정말 칼을 갈고 OST 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영화 자체는 앞으로 시작될 시리즈의 프리퀄에 가깝고 이것만 봐서는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이 아무 것도 없다시피 했는데, 그냥 끝내주는 영상미와 끝내주는 OST 만으로 값어치를 하는 영화였다.

라스트 듀얼: 최후의 전투

첫번째 감상은, 중세라는 게 이렇게 멋없는 것이었구나 하는 것이었다. 저는 웹소설로 중세를 접해서, 깨끗한 테라스에서 커피와 디저트 마시는데 하늘 위로 레드 드래곤이 날아가는 중세 판타지만 봤거든요. 실제 중세의 기사도와 결투는 철판 둘둘 두르고 하는 진흙탕 개싸움 같은 거구나. 오케이 잘 알았습니다.

중세에 한창 관심을 가지던 찰나에 봤기 때문에 중세 고증이 잘 되어있다는 점은 좋았다. 참고용으로 한번 더 보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외에는 참기 힘든 지점이 많았다. 일단 나는 잔인하고 무서운 장면에 취약해서 19금 관람가가 붙은 영화는 어지간해선 보지 않는데, 이 영화의 강간씬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기준선을 아득히 넘어있었다. 왜 이렇게 길고 끔찍하고 잔인하게 보여줘야 하는 거에요. 저 너무 힘들어요…

세 가지 시선을 보여주면서 마지막 챕터에서 ‘이것이 진실’이라고 강조하는 것도 내 취향은 아니었다. 관객이 직접 판단해서 세번째 시선이 가장 진실에 가까울 것이라 생각하는 것과, 이 서사에 대한 최종 권한을 가지는 감독이 이것이 진실입니다 하고 땅땅 못 박는 건 다르잖아요. 결말은 같아도 거기에 도달하는 과정은 온전히 관객의 것이었으면 좋겠는데 꼭 권위자가 개입해야 했을까 의문이 들었다. 물론 영화라는 창작물 자체가 감독의 편집 하에 만들어지는 거니까 권위자의 개입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딘가 찝찝해.

그리고 강간씬을 최대한 끔찍하게 보여주며 역지사지로 관객을 설득하는 것도 뭐랄까, 효과적이긴 하겠지만, 피해자의 고통을 강조해서 사태의 심각성을 말하는 건 좀 위험하지 않나? 그럼 만약 피해자가 그렇게까지 고통스럽지 않았다면 강간은 별 게 아닌 일이 되나요?

나에겐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영화였다.

전시

앨리스 달튼 브라운: 빛이 머무는 자리

코로나 시대에 위안이 되는 전시였다. 호수의 수면과 거기에 비치는 빛이 아주 예쁘고, 보는 것만으로도 해방감이 느껴지는 그림들이었다. 그런데 작품 대부분이 있을 수 없는 가상의 풍경을 그리고 있고, 인물이 등장하는 게 하나도 없다가 최근작에서야 사람의 그림자 정도가 등장한다는 게 좀 묘하기도 했다. 그런 전시회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고 모두가 인스타용 사진을 찍어간다는 것도.

초현실주의 거장들

내가 기대한 건 살바도르 달리의 흘러내리는 시계 같은 기묘한 작품들이었는데, 그런 작품은 절반 정도고 나머지 절반은 여성 신체에 대한 기괴한 변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대체 여성 나체에 손잡이와 서랍장을 만드는 게 어디가 참신한 거에요? 그와중에 손잡이는 꼭 가슴 두쪽에 만드는 거 너무 진부하지 않아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