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백

아무리 잘 만들었다 해도 한 시간짜리 영화에 만오천원은 너무 비싸지 않나?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고 모든 게 잊혀졌다. 끝나자마자 바로 서점에 가서 원작 만화를 샀고 그 자리에서 읽고 다시 울었다. 쿄애니 방화 사건이 있었던 당시에 KU시네마테크에 후원 상영회도 갔던 사람으로서 이런저런 생각이 안 들 수 없었다.

2차 창작을 쓸 때도 블로그에 글을 쓸 때도, 하다못해 SNS에 사진 한 장 올릴 때조차 문득 고개를 드는 의문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 의 답은, 결국 찾고 나면 그렇게 멀리 있지 않다. 설령 단 한 명일지언정 누군가가 기억해 줄 궤적을 내가 남겼다면 그건 정말이지 근사한 일이다. 두 주인공의 삶이 만화를 통해 마치 무한 기호처럼 연결되듯이.

쓰다 보니 영화 다시 보고 싶네. 영화의 사운드트랙도 정말 좋았다. 아주 완벽한 한 시간이었다.

빅토리

영화를 많이 본 한 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올해의 TOP 3 안에는 꼭 들어갈 영화. 포스터와 예고편만 보면 대충 『써니』 같은 느낌의 유쾌한 청춘물이 아닐까 싶지만 이 영화 생각보다 혁명적이다. 90년대 거제의 딸들이 노조 현장에서 띠 두르고 치어리딩하는 장면 꼭 봐야 한다. 이 영화의 에너지가 너무 좋아서 극장에서 총 세 번을 봤는데, 마지막 3회차는 홍대까지 가서 무대 인사 회차로 챙겨봤다.

개인적으로 필선이가 옥상에서 춤추는 씬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경상도 장녀가 고향을 등지고 수도권에 정착할 때 한번은 거치게 되는 분기점이 그 장면에 있다고 느꼈다. 고향에서 내가 겪는 불합리를 알고, 실은 부모님이 나보다 더 그 불합리를 온몸으로 겪고 있다는 것도 아는데, 내가 잘하면 이걸 벗어날 능력이 있는 것도 알고, 그게 부모의 기대인 동시에 불안인 것도 알 때. 내 가족 내 고향을 나름대로 아끼는 동시에 지긋지긋하다고 느낄 때. 그 애증이 나의 발목을 잡을 때… 탈출을 응원해 주는 어른도 있고 그럴 능력도 있을 때 눈 딱 감고 수도권의 능력주의 파도에 올라탈지, ‘그냥 그때 떠나지 왜!’ 소리를 평생 들을 걸 알면서도 현재를 외면하지 않을지. 그걸 결정하기까지 옥상에서 하염없이 춤추는 씬이 정말 인상적이었고, 결국 마음을 정한 필선이의 얼굴은 더할 나위 없이 후련해 보였다. 그 긍지는 우러러볼 수밖에 없었다.

위키드

『Glee』를 보고 자랐던 저는 드디어 Defying Gravity 라는 노래의 맥락을 알게 돼서 기뻤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집에 와서도 신시아 에리보와 아리아나 그란데의 Defying Gravity 보다는 레아 미셸과 크리스 콜퍼의 Defying Gravity 영상을 더 많이 봤어요.

2부도 어떠한 스포일러 없이 오로지 극장에서 스토리를 보겠다는 목표로 아무것도 찾아보지 않는 중인데… 11월까지 기다려야 하니 성공할지는 미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