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팀에서 일한지 만 4년이 되어 간다. 내가 한 팀에 4년을 머무는 동안 많은 분들이 팀에 합류했다가 다른 팀 다른 회사로 옮겨갔다. 그런 이별을 겪을 때마다 아쉽다. 함께 일해서 좋았어요, 언제든 편하게 연락 주세요, 따뜻하게 인사하지만 실제로 연락을 한 적은 한번도 없다. 물론 연락이 온 적도 없다. 업무 관계와 사적 친분 사이에 선을 긋는 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내가 이직을 시도하지 않으니 서로 연락을 주고 받을 명분도 이유도 없어서겠지.

이직하는 팀원들은 “ㅇㅇ님은 이직 안 하세요?” 하고 묻는다. 그건 아마 안부 인사 차원의 멘트였을 것이다. 하지만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무형의 압박을 받는다. 왜 네 연봉을 상승시키려는 적극적 액션을 취하지 않느냐. 네가 정체되어 있지 않음을 증명해라. 그건 개발자 사회의 정언명령이다. 개발자는 늘 성장을 갈구하고, 더 좋은 회사와 높은 연봉을 쫓아 자리를 옮길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모두가 그 정언명령을 기본 전제로 깔고 질문을 던진다.

나는 그런 인사를 받을 때마다 멈칫한다. 해당 전제에 따르면 나는 숙제를 미뤄둔 학생에 다름없기 때문이다. 지금 업무와 팀에 만족하고 이직 생각이 없다고 대답하지만, 대화가 끝나고 나면 링크드인 정주행을 하게 된다. 명절에 잔소리를 들으면 (ex. 넌 언제 결혼하려고 그러니) 신경 안 쓰는 게 이롭다는 걸 알아도 며칠은 화가 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한편으론 억울하다. 나는 단 한번도 이 이직 찬가에 내 의지로 동의한 적이 없다. 돈에 크게 관심도 없고, 연봉이 개인의 능력을 나타내는 유의미한 지표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또 설령 이직이 성장을 보장한다해도 그것을 개인에게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성장은 나를 위한 일이다. 자꾸 IT 업계가 “성장하는 개인”을 호명하는데, 나 자신을 위한 성장과 회사가 내게 원하는 성장은 엄격하게 구분하고 싶다. 후자는 성장이 아니라 초과 근무다. 취미 시간에 기술 블로그도 하고 사이드 프로젝트도 하고 거기서 길러진 능력을 업무에도 쓰는 사람을 뽑고 싶다면, 그건 무급으로 초과 근무하는 사람을 뽑고 싶다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무급 초과 근무를 바라면서 그 와중에 “진심”으로 개발을 “좋아”하고 “즐기는” 감정까지 요구하는 건 솔직히 악질이다.

내 성장은 오롯이 내가 결정한다. 개발자 타이틀을 나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일지 돈벌이 직업으로만 볼지. 개발자로서의 성장을 주된 목표로 삼을지. 삼는다면 정확히 어떠한 개발자를 목표로 나아갈지. 하나하나의 질문에 내 나름의 답을 내릴 수 있고, 그렇게 내린 답은 어떠한 검증도 필요없이 모조리 정답이다. 요즘 찬양 받는 키워드들 - 해외 이민, 연봉, 기타 등등 - 이 포함되지 않아도 여전히 정답이다. 사실 너무 당연한 말이라 굳이 글로 남길 필요가 있나 싶지만, 이직 왜 안 하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전의 성찰과 각오가 무색하게 흔들리는 것에 진절머리가 나서 짧게나마 텍스트를 쓰게 됐다.

참고로 내가 정의한 성장 안엔 초과 근무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무급은 커녕 돈 받아도 초과 근무는 하기 싫고, 솔직히 연봉 20% 줄이고 주 4회만 일하는 옵션이 있다면 기꺼이 받아들일 의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