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은 면접관
회사에서 면접관을 맡은지 세 달이 됐다.
면접관으로 선정되었다는 연락을 처음 받았을 땐 내심 뿌듯했다. 아무나 시키는 일이 아니라고 했고, 회사에서 인정받는다는 지표기도 했다. 내가 그런 일을 어떻게 하냐며 앓는 소리는 동네방네 하고 다녔지만 그건 진심인 동시에 자랑이었다. 소식을 들은 부모님이 ‘야야 잘됐다. 느 동생 꽂아넣을 자리 없는지 좀 알아봐라’ 하셨을 때도 그랬다. 그런 말을 농담이라고 주고 받을 수 있는 위치. 그와중에 ‘그런 말 함부로 하면 안된다’고 한마디 덧붙이는 나. 나쁘지 않았다.
면접관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할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OT 는 어떻게 하면 사람을 잘 뽑을 수 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회사 이미지에 덜 먹칠하는지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중요한 건 두 가지다. 첫째, 지원자는 지원자인 동시에 고객이다. 우리 회사 채용에 대한 이미지는 불합격한 사람들이 만들어낸다. 둘째, 지원자에게 합격 여부에 대한 단서를 주면 안된다. 이 두 가지 축을 두고 모든 규칙이 구성된다.
제가 오늘 면접을 잘 본 건가요? 대답하면 안된다. 혹시 선배로서 조언을 좀 주실 수 있을까요? 대답하면 안된다. 자칫하면 합격 여부에 대한 힌트가 될 수 있다. 면접관 님은 어떤 일 하고 계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이건 좀 어렵다. 너무 짧게 말하면 고객을 불친절하게 응대한 게 되고, 자세하게 얘기하자니 대외비에 걸린다. 오리엔테이션은 이런 시나리오를 수십개씩 읊어주는 시간이었다. 그냥 잘하는 사람 뽑는 게 다가 아니구나. 여기엔 여러 입장이 교차하는구나. 그런 생각에 마음이 복잡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잘해보자 다짐했다.
하지만 첫 실전은 내 예상을 아득히 초월했다.
“안녕하세요 리니어님. 혹시 내일 15:00-15:30 면접 진행 가능하실까요?”
“예? 저 아직 면접 참관도 한번 안 들어가봤는데요.”
“아… 이미 지원자 분한테는 일정 공유를 드린 상태여서요.”
“예??”
당시 내가 손에 쥔 건 오리엔테이션 ppt 파일 뿐이었다. 다른 면접관 분들이 면접을 어떻게 진행하는지는 아직 구경도 못 해 봤고, 내가 지원자로서 면접에 참여했던 건 6년 전이 마지막이다. 면접관 여러 명이 같이 들어가는 거면 모를까 우리 회사의 면접은 1:1 이었다. 그런데 당장 내일 면접을 들어가라고? 면접관으로 나를 들여보낼 거면서 내 일정은 물어보지도 않았다고? 그날 나는 불에 덴 사람마냥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나 대신 면접관 해줄 사람을 찾아다녔고, 가까스로 내 포지션을 참관인으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앞으로 모든 면접이 이런 식으로 진행될 거란 사실을 직감했다.
사람을 뽑을 때 별 가이드가 없다는 건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아니,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 내 손으로 이뤄지는 일들은 어설프다 못해 참담했다. 서류 평가 부탁드린다는 메일이 온다. 그럼 나는 그 사람의 지원서를 읽고 합격인지 불합격인지 결정해 답장한다. 결과는 그대로 지원자에게 전달된다. 내가 평가를 정당하게 했는지. 혹시 전날 술 먹고 제정신 아닌 채로 대충 쓰진 않았는지 한번 더 확인도 안한다. 왜냐면 시간 낭비니까. 최종합격까지 갈지 어떨지 알 수 없을 누군가의 지원서를 위해, 다른 일 하기도 바쁜 직원의 시간을 마구 끌어다 쓰는 건 수지타산이 안 맞으니까.
나는 늘 냉정하고 결백한 비판자가 되고 싶었다. 채용이란 게 이렇게 얼렁뚱땅 이뤄진다니 개선이 필요하다, 애초에 사람을 서류 한 장으로 어떻게 평가한다는 건가, 이런 불합리에 대한 고찰이 어쩌구 저쩌구. 난 그런 말에 능했고 또 그런 말을 할 줄 아는 나 자신이 좋았다. 그런데 막상 이 일의 당사자가 되니 몰아치는 모순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사람을 서류 한장만으로 평가하는 건 불합리하지만 난 해야 한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이 사람의 실력을 수치화하는지 나도 모르지만 나는 오늘 안에 등급을 매겨 메일 답장을 줘야 한다. 솔직히 어떤 날은 귀찮다. 지원자에겐 자기 커리어를 건 도전이겠지만 내게는 그저 가성비 잘 안 나오는 업무니까.
이제 나는 트위터에서 면접 과정에 대한 비판글을 보면 무슨 입장을 취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사람의 실력을 수치화할 수 없다는 건 누가 들어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수치화를 해야 한다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면접관은 공정하고 성실해야 한다, 너무 맞는 말이지. 하지만 그 면접관이 ‘얼마나 공정하고 성실했는지’는 또 누가 어떻게 평가한단 말인가. 그런 이상적인 논리를 현실에 녹이는 게 가능은 한 건가. 인터넷을 떠도는 각종 일침은, 대체로 맞는 말이되 그 다음이 없다. 마치 ‘앞으로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는 결론에서 결코 나아가지 않는 에세이 같달까.
면접관으로 선정됐을 땐 이게 나의 무기가 되리라 생각했다. 마치 던전의 용사처럼. 당사자성을 등에 업고 더욱 강한 비판자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길을 잃었다. 앞으로 내가 가야 하는 방향은 어디일까. 여태 내가 지켜본 채용은 선생님이 시험지 채점해서 돌려주는 과정이 아니고 피구 할 때 편 가르는 과정에 가까웠다. 학창시절에 피구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편 가를 땐 우선 반에서 피구 제일 잘하는 애를 데리고 오고, 그 다음은 친구가 많은 애들이고, 나머진 그냥 되는대로 데려온다. 거기에 무슨 철저하고 공정한 체계 같은 건 없다. 그런 거 만들 시간에 빨리 시작해야 더 오래 놀 수 있으니까. 피구와 채용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피구는 오늘도 하고 내일도 할 수 있지만 채용은 오늘 불합격 주면 내일은 못 만난다는 것에 있겠지.
이런 딜레마는 별로 알고 싶지 않았는데.